1차/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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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on5846 2024. 11. 9. 23:58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불쾌하다. 욕조가 있다. 욕조 안에 자신이 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 뻗어 있는 자신이 있다. 반쯤 물에 잠겨 있는 자신을 내려보는 자신이 있다. 꿈이라서 그런지 시야가 기묘하다. 넘쳐 흐르는 물은 곧 붉게 변한다. 물 속의 자신이 밖에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네가, 네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 라고 묻는 얼굴. 재수 없군.

 

'기분 나쁘다.'

 

눈을 뜬 리드는 아직 어두운 천장을 노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오늘 무슨 요일이었지? 하이가 가게에 나가봐야할테니까 아침을 차려야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멍하게 후라이를 만들고 있으려니 춥다. 슬슬 날씨가 이제 따뜻하게 입어야 할 때군. 전기 장판 꺼내야하나? 그런 생각하는 사이 일어난 하이가 후라이팬을 한 번 보고 씻으러 들어간다.

 

식탁에 마저 밥을 차리고 나온 하이와 교대해서 욕실로 들어간다. 꿈에서 봤던 욕조가 거기 있다. 현실에는 시체 같은 건 없지만 보고 있으니 꿈이 생각나서 불쾌해진다. 하지만 어쩌라는 건가. 자신이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가 자신을 잡아갈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은 하이를 놓칠 생각도 없고 말이다.

 

씻고 나오니 이미 옷을 다 갈아 입은 하이가 인사를 한다. 다녀올게, 도시락은? 같은 보통 사람과 같은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에서 악몽을 떨쳐낸다.

 

"오늘은 예약이 몇 개 있어서 점심 때 꼭 맞춰서 안 와도 될 거 같아."

"그러면 한가해지면 전화해요. 맞춰서 갈게요."

"그래, 조심해서 오고."

 

하이가 나가고 고요해진 집을 대충 정리하고 도시락으로 가볍게 먹을 샐러드랑 수프를 끓이면서 꿈을 다시 생각한다. 행복해 질 수 있을거냐니. 이미 행복한데. 꿈은 불안과 현실의 반영이라고 했던가. 자신은 현실에 만족하지만 불안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언젠가 자신의 과거 탓에 하이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

언젠가 자신의 과거 탓에 이 모든 것이 망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인간이란 본디 불안보다 행복을 택하는 사람 아닌가. 리드는 꿈을 떨쳐냈다. 이제 자신은 그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거니까, 앞으로 무슨 일 있어도 하이에게까지 영향이 갈 정도로 놔두지 않을거니까.

 

"오늘 도시락 하이가 좋아해주면 좋겠네."

 

그저, 하루 하루 당신을 위해,서 당신을 보면서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당신이 나를 싫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모를까. 그전에는 제 손으로 여길 나갈 생각도, 그를 떠날 생각도 없다. 제 몸의 하이가 그린 문신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게 희미해지기도 전에 헤어지면 웃기겠지.

 

도시락을 챙기고, 시간을 획인해본다. 지금 갈까. 조금 이르지만 근처에 별 일 없는지 한바퀴 돌고 기다리면 하이가 전화를 해주겠지. 가게 앞에서 기다리자. 저번에 보니까 괜히 하이 겉모습만 보고 시비 거는 손님도 있는 거 같던데, 하이 성격도 만만치 않으니 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단 말이지. 하이에게 말해봤자 하이는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래도, 역시 내가 가게 보디가드도 해야하지 않을까, 나중에 날 잡아서 한 번 말해봐야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