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시엔 린

린메이

notion5846 2025. 1. 9. 14:14

린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초대 회장이자 설립자는 작은 가게부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정정당당하게 장사를 하지 않았다. 당연스레 시엔 가문은 재산을 불려가면서 뒷세계와도 이어졌다. 그렇기에 가문과 조직의  연결 고리를 강화 시키기 위해서 린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마다 종종 조직에 맡겨졌다.

 

방학 때 별장에 놀러가듯이 린은 조직 사람들에게서 여러가지를 배웠다. 협박, 주먹을 쓰는 법, 무기를 다루는 법, 탈세하는 법, 그것은 회사 일을 할 때도 필요한 기술이었다. 시엔 가문만 뒷세계와 긴밀한 관계만 추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건 린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날은 마침 조직에서 처음으로 총을 만진 날이었다. 자신이 쏜 총에 쓰러지는 것들을 보고 온 날이었다.  그 화려한 연회장에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서 만난 또래의 여자아이. 고운 머리카락과 드레스를 입은 소녀. 문득 얘는 나처럼 그런 모습 안 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지웠다고 생각한 화약 냄새가 손에서 다시 나는 것만 같았다.

 

"린, 친하게 지내야한다?"

 

아버지가 활짝 웃으셨다. 그러고는 그 여자애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인사를 건낸다. 과할 정도의 칭찬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태도. 고운 드레스를 입고 자신을 조금은 뚱한 얼굴로 보는 아이가 너무- 그래, 부러웠다. 심술이 났다. 어린애 다운 질투였다. 나는 그렇게 고생하는데 쟤는 그런 거 모르겠지, 같은 그런 속 좁은 생각. 그래서 툭툭 건들였다. 그러다가 문득 그 애한테 말 거는 사람이 그 애 아버지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 엄마 없냐?

 

아마 바빠서 오시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심술 궂게 말한 이유는 그래서였겠지. 나랑 다른 사랑 애정 받고, 뒷세계는 모르는 막내딸이라는 편견 탓에 그리 말했다. 물론 그 뒤에 날라온 발차기에 자신도 지지 않고 달려 들었다. 그 때에는 몰랐지. 자신의 말이 그 애한테 상처인지.

 

"린, 수고했다."

"들어가십시요, 회장님."

 

멀어지는 조직의 회장을 배웅하고 몸에 묻은 혹시 모를 화약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새 옷을 꺼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메이를 떠올렸다. 물론 이렇게 나이를 먹은 지금은 메이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처럼 직접 적으로 일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제 메이가 자신의 착각처럼 마냥 사랑 받은 고운 딸이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알리고 싶지 않다.

 

어째서일까? 화약에, 피 냄새 범벅의 자신의 꼴을 봐도 메이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할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덤덤하게 말하고 대해주겠지. 그럼에도 싫다. 제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까. 대충 들린 가게에서 꽃다발과 목걸이를 사면서 그는 메이를 떠올렸다.

 

남편이라면 부인을 아껴야하는 건 당연해야하니까. 아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다를테니까. 이게 어릴적처럼 바보 같은 착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 만족 같은 착각이라고 해도,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다.

 

어째서 나는 너를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렇게 만나면 싸우고 욕하고 비웃었는데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일까. 같이 살면 정 들거야, 라고 말한 아버지의 말이 웃기게도 공감을 하고 있다.

 

"다녀왔어."

"어서와요."

 

약간의 텀과 함께 얼굴을 내밀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메이의 머리에 자신이 선물한 핀이 있다. 가볍게 입은 옷차림 위로 자신이 선물한 목걸이와 겉옷이 걸쳐져 있다. 꽃다발을 받고 살짝 시선을 돌리고는 고맙다고 하는 인사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이렇게 매일 사오다가 방이 꽉 차겠어."

"진짜 다 채워볼까?"

"어머, 사용인들이 있을 자리도 없어지겠어요."

"그러면 더 큰 곳으로 이사가면 되지."

"여기보다 더 큰 곳으로 갔다가는 마중 나오는 것도 힘들어지겠어."

"운동하는 셈 쳐."

 

내가 내미는 외투를 받던 손길이 멈칫한다. 코끝에 비린 냄새, 흙냄새가 나는 거 같다. 착각일까. 멈췄던 손이 자신의 외투를 가져간다. 언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알아도 몰랐으면 해, 그 말을 했을 때 내 옆에 있던 너는 현실의 너였을까. 우린 서로에게 거짓말하고 있는 걸까. 찰나의 멈칫을 모르는 척하고 외투를 받아든 너는 그걸 들고 나간다. 남겨진 나는 자연스레 담배를 입에 문다. 너는 그저 알아도 몰랐으면 좋겠다. 자세히 알 필요 없지 않는가. 나는 너를 그래, 소중히 여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