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고공&의진

아보와 고공-유년시절

notion5846 2025. 1. 9. 14:01

"오랜만이네요!"

 

사람들 사이 그 분홍색을 발견한 아보가 인사를 건내자 그는 살짜 미간을 찌푸리다가 곧 웃으며 그렇네요, 하고 대답해왔다. 이제는 그가 묘하게 거리를 두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보는 섭섭을 느끼기 보다는 반갑게 인사하며 고공의 앞에 섰다.

 

"여긴 어쩐 일인가요?"

"아, 이 근처에 산동악가가 있던가요? 별 일이 뭐 있겠습니까? 배달입니다."

 

그리 말하면서 자신이 짊어진 나무함을 가르킨다. 꼭 관짝 같다는 생각이 드는 길쭉한 함 안에는 시체 대신 배달 품목들이 가득 들어 있겠지. 바빠 보이지도 않고, 걸음도 느긋해 보이고, 마을에 들린 걸 보며 배달이 끝난 걸까?

 

"식사라도 하시고 가시겠어요?"

"아뇨."

 

거절 당할 것을 짐작했지만 저렇게 즉답으로 대답할 줄이야. 이만, 하고 등을 돌려서 가는 그 뒤를 아보는 뒤쫓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서 아보는 자신의 집쪽과 멀어지는 등을 번갈아 보며 잠시 고민하다 멀어지는 등을 뒤쫓았다.

 

"귀가 안 합니까?"

"하지만 이렇게 보는 것도 오랜만이잖아요. 다음 마을에서 서신이라도 쓸게요."

"다음 마을요?"

 

고공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진다. 다음 마을? 아, 물론 큰 마을이라 다음 마을까지 길도 잘 닦여 있고 제 걸음으로 뛰어가면 그리 멀지 않다. 그치만 아보를 데리고 간다면 좀 더 걸릴테고 그 사이 악가에서 애가 없어졌다고 난리치지 않을까. 납치범으로 오해 받고 싶지 않단 말이지. 배달도 끝났는데 좀 천천히 돌아가도 되려나. 복잡한 생각에 고공이 말이 없어진 사이 아보가 지금 말 하고 올까요? 라는 말을 꺼냈다.

 

산적이랑 같이 옆마을 간다고요? 얼빠진 소리를 내는 고공의 손을 잡고 아보는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집쪽으로 가는 아보를 두고 갈까 싶다가도 우는 모습이 상상이 되서 결국 고공은 아보를 기다렸다.

 

나이가 아직 어리니 가문에서도 안 내보내겠지, 적당히 설득하고 헤어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고공의 예상과 다르게 아보는 활짝 웃으며 작은 보따리와 창을 들고 돌아왔다.

 

"뭐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이모가 일하는 곳의 아는 분이랑 옆마을에 다녀온다고. 저도 이제 어느정도 나이가 있으니 협행을 대비해서 옆마을까지만 간다고 했죠. 마침 옆마을에 저희 식솔 중 한 분이 일 때문에 나가겠시거든요. 어디 계시는지도 아니까 걱정마세요."

"이모가 일하는 곳의 아는 분?"

"거짓말은 안 했어요."

 

거짓말은 아니지. 소속이 다르지만 일하는 곳의 아는 사람은 맞지. 고공은 질렸다는 표정을 아주 잠시 지어보였다가 곧 재잘재달 떠들기 시작하는 아보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옆마을까지면 2~3일 걸리려나. 그리하여 고공은 뜻밖의 동행인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자였으면 길에서 벗어나 경공으로 냅다 달려겠지만 아보가 있기에 고공은 길을 따라서 걷기로 했다.

 

"저도 경공할 수 있어요."

"저랑 나란히 오래 달릴 수 있으면 그 때 그렇게 해요."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어요?"

"삼일밤낮으로 쉬지 않고 달릴 수는 있습니다. 어느정도 내공 조절을 해야하지만 말이죠."

"진짜로요?"

"진짜요. 저보다 뛰어나신 분들은 더 하겠죠."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보가 싫지 않다. 아직 어린, 배신이라고는 잘 모를 아이.

 

"있잖아요, 이번에 새로 창술을 익혔는데 볼래요?"

"제가 본다고 뭐 가르쳐 드릴것도 없습니다."

"에이, 그런 거 받으려고 보여드리는 것도 아닌걸요."

 

번쩍이는 창을 들고 활짝 웃는다. 15살의 서유혼이 어땠더라? 싶어져서 걸음이 느려졌다. 가문에서 아보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모르지만 그래도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언젠가 이 아이도 커서 강호행에 나서겠지. 협행을 하면서 온갖 더러운 것을 보겠지. 차라리 나가지 말고 가두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는 주제 넘는 생각이 들어서 고공은 느려진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래서 말이죠, 다음에는 이모님이 일하시는 걸 보고 싶어요."

 

다르다. 다른 아이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망령을 떨쳐내며 고공은 아보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이토록 밝고, 옆에 듬직한 어른도 있으니 그런 더러운 것들을 봐도 괜찮겠지. 떠오르는 온갖 감정들을 삼키고 고공은 아보를 마주보았다. 

 

"고공?"

"날이 어두워지니 야영 준비하죠."

"네!"

 

장작을 줍고, 불을 피우고 미리 익혀둔 건지 서툴지만 하는 걸 보니 악가에서 다녀오라고 한 이유도 알 거 같기도 하다. 물론 같이 동행하는 사람이 산적이라고는 생각 못 해겠지.

 

"아, 혹시 여기서 야영하시나요? 실례합니다. 저도 길 가는 상인인데 혼자라서 그러니 같이 하루 지내도 될까요?"

 

불쑥 나타난 낯선 이를 보면서 아보가 자신을 돌아본다. 괜찮나요? 하고 묻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보의 소매를 잡아 제쪽으로 잡아 당긴다.

 

"거절합니다. 길 위에서 보는 낯선 이만큼 위험한 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지마시고 옆에 아가씨 옷을 보니 어디 좋은 집안에서 온 거 같은데 자비 좀 베푸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물어가는 해에 비치는 옷은 확실히 좋아보인다. 얕보이는 건가. 고공의 눈은 상대의 손의 움직임을 보았다. 소매 안에서 튀어나오는 무기가 보였다. 길게 생각할 틈도 없었다. 몸에 베인대로 삽을 들어서 상대의 손을 후려쳤다. 패거리가 있을지도 모르지, 살려두면 골치 아파. 녹림은 아닐 것이다. 삽과 검이 부딪친다. 몸은 익숙하게 상대의 배를를 찌른다.

 

찌르고 나서야 아, 싶어져서 아보를 돌아보았다. 척 봐도 놀란 표정이다. 달래주는 법 같은 건 모른다.

 

"시체, 묻고 올테니까 기다리세요."

 

그래도 괜찮겠지. 나말고 믿음직한 어른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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