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고공&의진

마조-영혼 체인지

notion5846 2025. 1. 9. 14:01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침상, 벽에 걸어 둔 옷, 작은 협탁과 붓과 벼루가 전부인 깔끔하고 아무것도 없는 방. 호오는 이 방을 알고 있다. 전에 몇 번 본 적 있다. 청림채에 있는 고공의 방이지. 근데 보화채에 머물고 있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 걸까? 호오는 몸을 일으켰다. 원래라면 자연스레 흘려내릴 하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다. 손을 들어 확인하니 분홍색이 보였다. 얼굴을 더듬어 가본다. 이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다. 입술 아래에서 만져지는 희미한 흉터의 흔적, 말끔한 목. 고공이 된 걸까? 그러면 고공은 어디로 간걸까?

 

호오는 몸을 일으켰다. 몸에 딱 달라 붙은 얇은 내의는 밤 사이 흘린 땀 탓인지 젖어 있었기에 호오는 그것을 벗고 벽에 걸려 있는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러보니 이렇게 맨몸을 봐도 되나? 고공은 씻거나 할 때에는 혼자서 숲에 가서 하고 왔기에 몸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것쯤이야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의만 입고 나갈 순 없지 않는가. 꼼꼼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방을 나왔다.

 

"오늘은 조금 늦게 나왔네."

 

오랜만에 보는 청림채 채주, 유소와 눈이 마주쳤다. 호오는 잠시 고공인척이라도 해야할까? 고민했지만 그만두기로 하였다. 솔직하지 못하게 연기를 하는 것도 아름답지 못하고 그것은 자기가 잘하는 분야의 일도 아니다. 그렇기에 호오는 평소의 자신처럼 유소에게 인사를 건냈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 좋네. 잘 지냈어?"

"뭐?"

"나야, 호오. 글쎄, 일어나보니까 공이가 되어 있는거야."

 

유소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한다. 상대를 약간 안쓰럽다는 듯이 보는 거 같다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변하고 이윽고 약간의 납득하는 거 같은 표정을 보인다.

 

"여전히 아름답네."

"그 말투까지 호오가 맞군."

"믿어주는거야?"

"그래, 그 녀석이 이런 장난질을 할 성격도 아니고 그런 표정을 지는 편도 아니지. 그러면 고공은 어디로 간거야?"

"보화채에 있지 않을까? 내가 거기 있었으니까. 내 몸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기 가다가 길이 엇갈리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려야겠어."

 

다른 산적들에게 사실을 말할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의 호오 태도를 보니 고공인척 할 것도 아닌 거 같으니 그냥 두기로 했다. 평소에도 고공이 자기 스스로 미쳤다고 말하고는 하니 이번에도 다들 걍 그럴려니 하겠지. 아무튼 달라질 건 없다. 고공의 몸이지만 호오는 어색한 모습 없이 남은 밭일을 해왔고 호오를 기억하는 일부 산적들은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대놓고 물어오는 이들은 없었다.

 

고공의 몸으로 호오가 자길 소개해도 아, 저거 진짜 미쳐버렸나, 하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유소는 딱히 그것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자기가 정정해줘봤자 오해할 녀석들은 오해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보름이 조금 넘어갈 쯤 그가 나타났다.

 

"여기 있습니까?"

 

냅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상대를 향해 호오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고공의 시선이 호오의 손에서 그의 몸과 얼굴로 향한다. 그리고 이윽고 화려한 머리 장식과 귀걸이를 한 제 몸을 본 고공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그리고 이윽고 장식구가에서 벗어난 시선이 평소 자신이 입던 옷이 아닌 전혀 다른 새하얀 옷을 걸치고 있는 것에 닿자 더 일그러졌다.

 

"그 옷 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익숙한 옷을 입고 싶었거든. 너도 마찬가지잖니?"

 

평소 호오와의 옷차림과 다르게 단단히 싸멘 옷을 가르키며 돌아온 대답에 고공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혼자 옷 갈아 입은겁니까?"

"물론이지. 공이 몸을 본 것에 대해서 화 난다면 사과하겠지만 불가항력이었잖아? 옷을 안 갈아입을 수는 없고 안 씻을 수도 없잖아."

 

고공의 표정이 더 구겨진다. 뭔가 참는 듯이 입술을 깨무는 거 같더니 이윽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손가락 틈으로 정신 없이 흔들리는 눈이 보인다. 자신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들끓는 이 얼굴 나쁘지 않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지 않는가. 겉이 아닌 속이 다르니까 나오는 이 감정의 표현이라니!

 

"내가 몸을 본 게 그렇게 싫은거니~?"

 

겨우 진정한 거 같은 얼굴이 한 번 더 구겨진다.

    

"잊으세요."

"노력해볼게."

 

고공은 호오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헛구역을 하고 말았다. 호오가 자신의 몸을 본 것이 상상만으로도, 그걸 인정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진다. 이제는 희미해진 흉터라지만 그걸 보이는 건 여전히 최악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은, 얼굴의 흉터는 그래도 그가 망설였던 거 같았는데 두번째의 그 흉터는 망설임을 버리고 자신을 죽이려는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해서, 보고 싶지 않다. 남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제 몸 돌려주십시요."

"하지만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걸."

 

제 몸을 한 고공이 하는 욕을 들으면서 호오는 고공의 몸으로 즐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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