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시리즈들은 대게 가동한 뒤 10년 전후로 은퇴한다. 메모리는 분해 되고, 몸체 파츠는 재활용 된다. 그에 반해 8245-P-27은 40년 동안 가동 되었다. 이유는 그가 머문 교구의 성직자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한 덕분이었다. 늙은 성직자는 기기인 그에게도 동정심을 베풀었다. 그렇게 가동 한지 15년 째, 프로그램 사이로 작은 오류가 생겼다. 신도들에게 대답하는 반응 속도가 0.6초 정도 느려졌다. 계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가끔 이 좁은 고해실을 나가고 싶어졌다.
원래라면 해서는 안 되는 영역. 이건 오류다. 명백한 오류. 보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때 고해성사를 하던 이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너무 오래 일해서 지친 거 같아요. 전부 다 그만 두고 싶어요.
얼굴조차 모르는 신도의 말에 자신의 오류를 깨달았다. 나는 지친 거 구나. 다른 기체들보다 더 오래 가동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신도들을 보고, 듣고, 보고, 보이지도 않는 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쳤다.
자신은 지친 거 다. 그걸 자각하자 오류를 묻어두기로 하였다. 이대로 오류로 인하여 고장 나서 빨리 은퇴하길 바랬다. 그런 감정에 사로 잡힌 상태로 25년이 지나갔다.
"진짜 안드로이드야?"
그 와중에 그 사람이 먼저 찾아왔다. 고해실 벽 넘어 자신에게 묻는 그 말로 그가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관광객이 신기하게 여기고 찾아오는 일은 종종 있었으니까. 그 사람은 몇 번이고 찾아왔다. 고해실에 들어왔으면서 그가 하는 말은 고해가 아니라 잡담이었다. 오늘 뭐 먹었는지, 네가 오늘 미사 보는 걸 봤다, 같은 소소한 잡담들. 고해성사 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 지독한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늙은 성직자가 자신의 머리를 쓰담아 주면서 이제 은퇴를 미룰 수 없구나, 라고 말했을 때 자신의 프로그램은 기쁨을 도출해냈다. 이 지긋지긋한 지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프로그램에 오류가 났지만 그래도 기뻤다. 어서 빨리 은퇴 되길 바랬다. 이 좁은 고해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거 뿐이라고 믿었으니까.
"이야, 실물은 훨씬 낫네."
자신을 빼돌린 이의 얼굴은 처음 봤지만 목소리는 알고 있었다.
"아, 내가 누군지 알아 보겠어?
"압니다. 그보다 저를 왜 훔치신겁니까. 저는, 저는 은퇴 해야했습니다."
그래야지 그 지겨운, 피곤한 고해실을 나올 수 있었는데, 어, 하지만 지금 자신은 고해실을 나와 있는 것 아닌가. 그 손에 잡혀서 멀어지는 종교 건물을 보면서 자신의 프로그램에 오류가 나는 걸 느끼면서도 자신은, 자신은 기뻤다. 머릿속에 울리는 경고음은그 사람이 지워주었다. 새하얀 사무실을 보면서 그곳에 나온 것을 실감한다.
"왜긴? 도구도 오래 쓰면 손에 길들여지니까!"
자신을 그렇게 오래 아낀 늙은 성직자도 저렇게 생각했을까. 멍하게 있으려니 커피를 쥐여 주는 이, 머리를 만져주는 이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에서 왁자지껄 떠든다. 커피 향이 후각 센스를 가동 시킨다. 가끔 고해실에 커피를 들고 오던 신도를 떠올린다. 그 신도 말이 맞다. 커피향은 참 좋다.
"데이터가 쌓인 기계는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지만 신기하잖아. 종교적인 부분에 사람 대신 기계를 투입하다니. 사람이랑 기기라 뭐가 다르지?"
"기기가 좀 더 비밀을 더 지킬 수 있죠.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니까요."
"하지만 넌 지금 평소와 다른 감정을 보이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너는 가치 있는 안드로이드지. 너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문득 언젠가 들었던 타국의 옛날 이야기가 생각났다. 물건에도 혼이 깃든다. 살아서 움직인다. 마음이라는 건 곧 혼인가. 감정이라는 건 영혼일까.
"저는, 뭘 해야할까요?"
"고해성사가 간절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하지만 살아감에 의미가 있나. 인간 또한 신의 피조물로 빚어졌지만 처음부터 목표를 갖고 태어나진 않았잖아? 그러니 명령이 없는 한, 이곳에서 네가 마음가는 대로 지내면 되는거야."
하고 싶은 것은 뭘까. 가끔 다가오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향을 즐기다가 그 사람을 따라다녔다. 프로그램은 이 사람이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나온 행동이었다. 강새이 같다고 웃으며 옥상으로 향했다. 반짝거리는 야경이 메모리에 새겨진다.
"저는 가동한지 40년 째입니다. 강새이가 아닙니다."
"내가 살던 곳에선 나보다 어리면 다 아기였어~."
"이런 풍경을 인간들은 좋아합니까?"
"하지만 저 불을 끄는 게 내가 하는 일이지. 모든 인간이 양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야경을 등지고 웃는다. 문득 성서의 내용을 떠올린다. 신은 지상으로 내려와 죄 지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을 구원하셨으며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를 주었다. 미사를 보면서 지겹도록 말한 내용이다. 어쩌면 성서의 내용은 진짜일지도 모르지. 진짜 신인지 아닌지 몰라도 누군가가 누구를 구해주고 남은 기록일지도 모른다.
"제가 당신을 도우면 되겠습니까?"
"음~, 생각해보니 너도 전깃불 먹는 게 일이구나. 날 도와준다는 말만 들어도 기특한데 그럼, 여기서 저 건물까지 뛰어 롤라와서 착지 할 수 있나?"
"가능합니다. 안 될 거 같으면 던지셔도 됩니다."
"푸하하하, 전직 성직자가 주인 바뀌었다고 이런 나쁜 일 해도 되는 거야? 어찌 보면 너도 나한테 납치? 도둑질? 아무튼 당한건데?"
파직, 작은 스파크가 튄다. 오류가 일어났다는 증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가동한다. 당신이 나를 구했다. 그 지겨운 고해실에서 나를 구원하였다. 어째서 인간들이 신을 찾는가, 그 의문을 알 거 같다고 한다면 당신은 웃을까.
"당신이 제 주인잖습니까."
"별난 놈일세. 주인 하나 바뀌니 태도가 돌변하다니. 그러면 이제 고해 성사를 들려주는 입장이 되는 건가?"
"그러네요. 고해실 들어가서 나올 수 있는 쪽이 되었네요."
"그러냐. 흐음, 그러니까 너-."
"모델명 8245-P-27 입니다."
"길어."
"그러면 따로 호칭을 붙이셔도 됩니다."
잠시 말이 없다. 기온이 좀 더 내려갈 쯤 춥다면서 다시 계단으로 향하던 그가 입을 연다.
"리베로 하자."
"당신이 그러기를 원한다면요."
리베, 그 이름을 입력한다. 교리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에는 누구나 신이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로봇인 내 프로그램에 당신이 있다고 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도출되는 생각에 스파크가 다시 튄다. 쌓이고 쌓이는 것은 오류인가, 마음인가. 그것만은 아직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