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고요는 눈을 뜨자 느껴지는 목의 칼칼함과 띵한 머리에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곧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잠든 천룡이를 품에서 내려놓고 눕힌 다음 방을 나와서 마스크를 찾아 쓰고 체온계로 자신의 열을 확인하였다. 약간의 열이 있군. 천룡이한테 옮은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기약을 찾아 보지만 안 보인다.
"뭐 찾으세요?"
"혹시 감기약 봤어?"
"감기신가봐요. 어쩌죠, 저도 없는데 가서 사올까요?"
혼자 지낼 때에는 감기가 걸렸던, 열이 나던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사는 이상은 조심해야겠지. 아직도 전염병이 돌기도 하니까. 지갑을 꺼낸 고요가 돈을 건내주기도 전에 이미 외투를 걸친 토키가 나간 뒤었다. 맙소사, 나보다 어린애한테 돈도 안 주고. 나중에 계좌이체 해줘야지.
"고요?"
어느새 일어난 천룡이 부르는 소리에 고요는 대답하며 방문 앞으로 가 자신에게 오려는 천룡을 손을 들어서 제지하고 뒤로 물러났다.
"죄 지었어?"
"감기 기운이 있나봐."
"갑자기 일교차가 나기는 했지."
"아직 심한 편은 아닌데 그래도 감기인데 옮기라도 하면 안되잖아.
천룡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다시 다가오려는 것을 피해서 뒤로 물러나니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피하니까 기분 나빠하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지.
"이미 너랑 밤에 같이 잤는데?"
"몰랐으니까. 알면 안 해야지."
"이게 무슨 범죄도 아니고 내 애인을 내가 못 안아?"
어이 없어하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천룡이를 두고 부엌으로 가려고 하자 그의 손이 고요의 어깨를 붙잡았다. 들어가서 잠이라도 자고 있던가, 하고 방으로 넣어진다. 뿌리치려고 한다면 뿌리칠 수 있지만 삐져 있는 걸 굳이 더 자극하면 안되겠다 싶서서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난다. 천룡이가 요리를 잘하던가? 혹시 모르니 각오를 해둬야겠네. 노트북을 꺼내서 일 관련된 메일과 의뢰인과 약속이 있는지 스케쥴을 확인하고 나니 꽤 맛있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이 의뢰인은 조금 까다롭던데 의뢰 내용도 오래된 흉가 처리라서 준비를…….'
"아프다고 애인의 포옹도 거절했으니 의뢰도 포기하시지?"
어느새 들어온 천룡에 의해서 노트북과 죽그릇의 위치가 바뀌었다.
"룡아, 잠깐 확인한 거 였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걸로 봐서 잠깐 확인은 아닌 거 같거든?"
노트북을 들고 나가는 천룡을 차마 붙잡지 못 하고 숟가락을 든다. 참치죽인가. 제법 괜찮다. 누룽지가 조금 많은 거 같은데 아닌가? 밖에서 토키가 돌아온 소리가 들린다. 그릇을 다 비우고 밖으로 나오려니 귀신처럼 스윽 다가온 천룡이를 그릇을 가져가고 토키가 물과 감기약을 내민다.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으래요."
"룡이 삐졌지?"
"그런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으세요?"
"내 잘못이지."
"아."
"약 사다줘서 고마워."
"빨리 나으세요."
토키도 가고 그릇을 부엌에 두고 거실로 가는 천룡이를 불렀다.
"조금이라도 네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거야."
"그정도 감기로 골골거리는 약한 인간은 아니거든?"
"그래도 감기는 심해지면 위험해."
"말은 잘해."
"나으면 싫다고 해도 안아줄게."
"얼씨구, 그래. 빨리 낫기나 해."
그의 선글라스처럼 변한 뺨은 색을 보고 더 삐지기 전에 입을 다물고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