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었네요, 자기~?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마다 등골이 오싹하다. 언제나 입가에 짓고 있는 미소를 볼 때마다 잘 생기기는 했지, 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저 한동안 자리 비워도 될까요?”
“뭐어?”
“사고 안 쳐요. 진짜 잠깐 며칠만 자리 비울게요. 혹시 제가 없으면 외롭나요?”
“당장 꺼져.”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그가 손을 뻗더니 자신을 끌어 당신다. 내려다 보는 눈동자가 마치 흘러 내릴 것처럼 꿈틀거린다. 그것을 멍하게 보고 있으니 이윽고 입술이 닿았다. 놀라서 도망치려는 것을 양손 목을 잡고 제 품에 가둔다. 손뿐만 아니라 몸 위를 기어다니는 촉수가 몸을 휘감는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질척하게 들어오는 것이 촉수인 걸 알고 본모습이라도 드러내서 도망쳐야하나? 하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입 안으로 뭔가가 들어온다.
혀는 아닐것이다. 애시당초 그는 사람이 아니고, 혀가 목을 넘어 오는 존재는 보통 사람 중에는 없을테니까. 숨이 막히지는 않는다. 그저 목구멍 넘어로 뭔가가 넘어오는 것이 불쾌하면서도 묘한 단맛이 나는 것이 기분 나쁘다. 결국 그가 자신을 풀어주자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보았지만 전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한 번 더 꼬옥 끌어안고는 다녀올게요, 인사말을 남기고 휙 사라진다.
없으면 더 편하지. 어디 가서 사고라도 안 치면 다행이고, 미테는 텅 빈 제 옆자리를 보며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없으면 더 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그렇다고-.
“일주일이나 안 보여? 장난하냐?!”
안 그래도 전직 빌런이라서 꼬박꼬박 감시하고 보고서도 올려야하는데 어떻게 일주일이나. 진짜 어디서 사고 치는 건 아니겠지? 근데 어디서부터 찾아야하는거지? 고민 끝에 미테는 서류상 헤일로의 집으로 등록 되어 있는 집으로 향했다. 물론 거기에 멀쩡한 집이 있을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그렇다고 공터가 있을 줄은 몰랐지. 미테는 자신의 허리까지 풀들이 멋대로 자라난 주택들 사이에 자리 잡은 공터를 보면서 이마를 짚었다.
그냥 가서 얌전히 기다릴까. 고민하는 사이 발은 어느새 출입금지 표시를 넘어 공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고작 40평 정도의 이 네모난 공간이 뭐라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시야가 가려졌다. 분명 허리 밖에 안 오는 풀 밖에 없었는데 그 풀들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라났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발밑이 꺼지는 느낌과 함께 추락하기 시작했다.
함정인가? 하지만 위험은 감지 되지 않는다. 추락하던 몸은 금방 바닥에 닿았다.
“이게 그 자식 집이야?”
아무 것도 없다. 바닥도, 위도, 옆도 사방이 전부 하얀색이다. 지금 자신이 서 있다는 감각도 없다. 그냥 하얀 공간에 떠 있는 감각. 손끝에 닿는 감각마저도 흐리멍텅해서 가본 적은 없지만 우주에 있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어진다. 인간이 아닌 자신도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공간이다. 딱 그놈에게 어울리네, 싶어져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아니 이걸 걷는다고 해도 되나? 풍경이 변하는지, 내가 이동하는지도 모르는데?
“자기?”
이 하얀 공간에서 그 검은색을 보자 반가움이 밀려왔다.
“잠시가 일주일이냐!”
“걱정했어요? 이제 여기서 나갈까요?”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뻗으려는 손이 멈췄다. 뭔가가 제 팔을 잡고 뒤로 잡아당긴다. 그것이 이상해서 팔을 보는데 그가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
“자기?”
“어, 그게 말이야. 여기가 집이야?”
“일단은 그렇죠. 그보다 우리 어디로 가죠?”
“어디로 간다니 그거야 당연히 히어로-”
본부에 가야지 라고 말해야지 하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목구멍이 막혔다. 쿨럭, 기침하자 입에서 검은 타르 같은 것들이 흘러나온다. 아, 이거 그거잖아. 그 망할 녀석의 일부. 일주일 전에 내 몸에 넣은 게 이건가? 그것은 하얀 공간에 얼룩이 되더니 가시 마냥 삐죽거리기 시작한다.
“자기.”
다시 고개를 든다. 눈앞의 그것이 눈을 든다. 하얀, 이 공간처럼 하얀 눈과 마주친다.
“너 뭐야?”
그렇지. 그 녀석은 하얀색 보다 검은색이 어울리는 존재 아니었나. 조용히 자신을 보는 그것은 향해 미테는 손을 들었다. 설령 이게 진짜 헤일로라고 해도 어차피 이대로 뒤질 놈도 아니지 않나. 하, 이제보니 목에 있어야 할 절취선도 없다. 뭐야, 이 가짜는. 양팔을 잡고 뜯어내자 사방을 하얀 액체가 터져나간다. 가만히 자신을 보는 눈알마저 뽑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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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헤일로랑 동족인가? 엎어진 것에서 나오는 소리는 의미를 거의 알수가 없다. 헤일로가 가끔 하던 이상한 소리라 비슷한데 저거 들은 다른 히어로 몇 명이 귀에서 피 흘리면서 쓰러졌던데 나는 멀쩡하네. 귀를 후비적하고 있으려니 아까 자신이 토한 검은 덩어리가 꾸물거리며 다가와 바닥에 있는 것을 삼키기 시작한다. 삼킨다? 덮는다? 표현하기 힘든데 아무튼 그런 현상이다. 덩치가 커지면서 우적소리와 함께 삼킨다 싶더니 하얀 공간이 점점 검게 변해간다.
“너 집 고르는 센스가 최악이다.”
“자기가 하나 정해줘요.”
어느새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그 초록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자신을 보고는 익숙하게 휘어지는 눈매로 웃는다.
“보험으로 자기 안에 나를 넣어 두길 잘했어요.”
“너, 그, 아냐, 됐다. 다음부터는 부디 넣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해라.”
“넣어도 되요?”
“꺼져.”
“그럼, 이제 갈까요?”
“어디로 가려고.”
뻗어오는 팔이 자신의 허리를 붙잡는다. 여전히 잘생긴 얼굴이란 말이야.
“히어로 본부죠. 어디기는 어디예요. 아무튼 당신이 그것에 대답 안해서 다행이네요.”
“대답하면 어떻게 되는데?”
“으음, 온전히 이쪽으로 온 게 아니라 일종의 미끼인데 대답하는 순간 연결 되서 좌표가 산출 되어서 전송문이 발동 되는데-알아 들어요?”
“못 들은 걸로 할게.”
“잘 생각했어요.”
다시 몸이 허공에 슬쩍 뜬다 싶어지고 눈을 깜박하자 어느새 공터에 도착해 있다. 대체 무슨 재주로 이러는거지? 싶은데 됐다. 그만두자. 어차피 저놈이 하는 우주의 지식이라는 거 들을수록 오염되는 기분이다.
“배고프네요.”
“방금 먹은걸로 부족하냐?”
“자기랑 같이 먹으면 배가 부를 거 같아요.”
“꺼져.”
그러면서도 충실하게 식당가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