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눈을 떴을 때 거기에는 처음 보는 방이었다. 화려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방의 침대 위에서 일어난 A는 여기가 어딘지 생각해보려고 했으나 생각지 않았다. 분명히 친구들이 술을 마시다가 주점을 나오고, 나오고, 기억이 안 난다. 필름이 끊긴건가? 그가 밖으로 나오자 길게 뻗은 복도가 그를 맞이했다. 복도 끝에는 있는 엘리베이터가 보여 그걸 타려고 하는 순간 다른 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드르륵, 거리는 바퀴 소리와 함께 눈앞의 모퉁이를돌아 나온 금발의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호텔 종업원인지 제복을 단정하게 입고 카트를 밀고 있던 그는 A를 보자 살짝 당황한 표정을 보이더니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는 A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저 엘리베이터 직원용인가요?"
사내는 자신의 카트에서 네모난, 아마도 메뉴판으로 보이는 것을 들어 보여주었다. 음식들로 보이는 사진이 보이고, 그 밑으로 글자들이, 처음 보는 글자들이다. 맹세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스쳐지나가면서 본 중동 지역 글자도 아니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청년이 입을 열었다.
"■▩ ㏘ ?"
그건 언어라기보다는 노이즈에 가까운 말이었다. A가 당황하는 티를 내자 그는 아주 작게 한숨을 내뱉더니 당황해하는 A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엘리베이터 같은 건 여기 없습니다."
그러면 저건 뭔데? 하고 묻는 것에 청년은 카트로 A를 밀며 청년은 엘리베이터와 반대 되는 복도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건 몰래 카메라인가? 친구들이 장난 치는 건지도 모르지. 그래, 어디 외국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한 사람만 놀리는 프로그램도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그는 이 장단 맞춰주기로 하였다.
"여긴 10층인데 5층까지는 일반 객실이고 4층은 식당이랑 푸드 코너, 3층은 상가, 2층은 카지노, 1층이 로비인데 4층까지만 내려가서 기다리세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걸지 마시고 혹시 분홍머리 삽을 든 직원 보면 도망쳐요. 하얀 사람을 보시면 그냥, 마음대로 하세요."
게임의 규칙이라도 있나보네. A가 대답하기도 전에 청년은 계단 앞까지 그를 데려다 주고는 카트를 끌고 복도 넘어로 사라졌다. 거참, 거창한 몰래 카메라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명의 사람들과 스쳐지나갔지만 말한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 걸지 않고 내려갔다. 몰래 카메라치고는 심심한데 그냥 다 내려가면 안되나.
5층에 도착한 그는 난간 아래를 보면서 생 각에 빠졌다. 아, 푸드 코너가 있다고 하더니 냄새 진짜 좋은데? 배도 고프고, 주머니에 돈도 그대로 있는데 하나 사 먹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자 거기에 그가 있었다.
분홍색 머리카락에 삽을 든 사내가 A를 향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도망가요, 라고 말하던 금발 사내의 말이 맞다는 듯이 달려드는 청년을 피해서 A는 다시 위로 뛰어 올라갔다.
"잠, 깐만!"
A의 비명에도 삽은 계속 휘둘러진다. 살벌하게 휘둘러지는 삽을 피하자 벽에 깡하고 부딪치는 것이 이것은 몰래 카메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상대는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 느껴졌다. 몇 번 삽이 머리 위를 스치자 짜증난다는 듯이 혀를 차는 소리도 들려온다.
"당신, 잡히는 게 어때요?"
잡히면 어떻게 되겠어. 당연히 저 삽에 머리가 깨지겠지. 계단을 올라와서 허겁지겁 도망치다 보니 엘리베이터 앞까지 몰렸다. 황급히 버튼을 연타하는 사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이거 몰래 카메라가 아니었나? 아니었다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익숙한 띵, 소리와 함께 빨라지는 걸음에 그는 결국 몸을 웅크리고 다가올 통증을 각오 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노골적으로 짜증난다는 얼굴을 한 분홍머리 청년과 엘리베이터에서 몸을 내밀고 A를 보는 하얀머리의 장신인 남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러면 안되지, 공아."
"삽에 머리가 깨지는 쪽이 더 편할텐데, 쯧."
"손님에게 그러면 되니?"
하얀 머리의 사내의 말에 청년은 뭔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달싹거리다가 삽을 거두고는 뒤로 물러났다. 사내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면서 사과의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A는 생각했다. 삽으로 자신의 머리를 깨려고 한 건 진심이었다. 이건 몰래 카메라 같은 것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눈 앞의 이 남자는 믿을만한 사람일까? 대화를 들어보면 저 흉기를 휘두르는 이보다 뭔가 더 높은 사람 같은데 한 편인가?
복잡해지는 머릿속 생각에 쫓겨 마침내 사내는 도망쳤다. 이번에는 그 누구도 그를 잡거나 쫓아오지 않았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호오가 미소 짓자 고공은 뻐근해지는 뒷목을 느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저 고민하는 얼굴 꽤 볼만했어, 그치?"
"네네, 당신한테 들키기 전에 죽이려고 했는데 실패했네요."
"당당하게 그런 말을 잘도 하는구나, 공아."
"당신 손에 잡혀서 이리저리 굴려지는 것보다는 저승행이 더 편할테니까요. 자, 자, 돌아가서 마저 일이나 하십시요."
"일하다가 내려온건데 또 올라가?"
"가뭄을 일으키고서는 처리도 안 했으면서 내려오지 말고 올라가십시요."
호오를 엘리베이터로 밀어넣은 고공은 A가 내려간 계단을 한참 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신경 쓰기 귀찮다는 듯이 걸음을 돌리다가 카트를 밀며 나타난 주뢰의 모습에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고공, 혹시-."
"아, 그 인간이요? 지금 내려갔는데 도울 생각인가요?"
"아무래도 길을 잃고 들어온 사람인데 도와야죠."
"호오가 이미 봤습니다."
"이런. 들키기 전에 내보내려고 했는데 호오가 이미 봤다면 돕기 힘들겠네요."
"포기하세요, 뢰. 저 성질 이상한 신은 자기 영역에 들어 온 인간을 어떻게 그냥 두겠습니까?"
두 천사는 곧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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