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보낸 부하가 알몸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적 있는가. 파를 마을에 팔고 오라고 했더만 명색히 산적이 습격을 당해서 옷이고, 돈이고 다 뺏기고 오다니 아이고야, 이마를 감싸 안으며 유소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멱리라도 머리에 쓰고 퍼득 다녀와야겠다. 그보다 여기에 산채가 있다는 걸 아래 마을 사람들은 다 알테데 산적을 털어 먹다니 어디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인가?
그 의문은 유소가 마을로 내려가자 곧 풀렸다. 길 한가운데에서 마주친 그는 분명 자신이 부하가 입던 옷을 입고 주먹밥을 손에 들고 있다가 유소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산채에 남아 있던 거 아니었나요?"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지요."
"산적이 산적을 털다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주먹밥을 베어물던 고공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 소리를 내었다. 영혼이 없는 짧은 사과에 유소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보니 전에 삽 들고 정말 잘 돌아다니던데 밭 가는데 충분한 힘이 아닐까.
"당신이 털어간 돈으로 새 비료랑 씨앗도 사고 식량도 사려고 했는데 당신이 전부 가져갔으니 그 댓가는 치뤄야겠죠?"
"도망치면 쫓아올건가요?"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양심이 있나요?"
양심이 있었으면 정파로 돌아갔지, 고공은 그렇게 짧게 덧붙이고는 남은 주먹밥을 마저 입으로 밀어넣었다.
"훔쳐간만큼 일해주시는거죠?"
"다시 돌려드릴까요?"
"이미 돈 다 쓴 거 아니었나요? 그리고 돌려준다고 해도 훔친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산채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떠돌아 다니는 것보다 숙식도 제공되고, 말 잘드는 부하들도 있고 어때요?"
"제가 산채로 가면 제일 막내가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럴 때 친분이 필요한거죠."
고공은 유소의 얼굴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사실 어디로 갈지, 갈 곳을 찾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어딜 가도 타인과 부대끼고 살게 되는거지. 다가오려는 유소를 피하듯이 뒤로 슬쩍 물러났다. 농사라,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무엇보다 유소는 자신이 쓸만하다고 생각하고 훔친 물건에 대한 값으로 자신을 데려가는 거니까.
결코 이것은 호의가 아닐 것이다.
"부하는 필요 없습니다. 숙식이면 충분해요. 밭은 넓습니까?"
"텃밭치고는 넓은 편이기는해요."
"구역 하나만 할당해주세요. 어떻게 해야할지만 알려주면 혼자서 하겠습니다."
"혼자서 하면 힘들지 않겠어요? 땅 파는 걸 보면 잘할 거 같기는 한데 괜찮겠어요?
"물론이죠."
자신을 걱정해주는 건지 고개를 갸웃하는 유소에게 고공을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하는 게 편하거든요."
"좋아요. 그러면 첫번째 일로 같이 마을에서 장 좀 봐요."
"영입을 하자마자 부려먹는겁니까?"
"소중한 농작물에 깃든 땀과 노력을 생각하면 많이 일해주셔야 한다구요."
"하하, 알겠습니다."
앞장 서서 걷는 유소의 뒤를 걸으며 고공은 빚을 다 갚으면 호의가 오기 전에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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