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고공&의진

주뢰&고공&호오

notion5846 2025. 1. 15. 16:14

아침부터 고공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꿈에 사형이 나왔고, 밤 사이 내내 가위에 눌렸고, 일어나서 계속 흉터가 쑤셔왔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이 그날인 걸 깨달았다. 서유혼이 사형의 칼에 베여서, 땅에 묻힌 날. 죽은 이의 기일 아닌가. 그걸 자각하자 입 안에서 흙맛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표정 모처럼 보는 좋은 표정이네."

 

그 와중에 다가온 호오의 말은 고공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속이 메슥거리는 와중에 다가오는 호오에게 저리 가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렇지만 호오는 다가왔다. 도망치고 싶은데 발이 땅 속으로 푹푹 빠지는 거 같은 착각이 들어 움직일수가 없다. 뻗어 온 손이 턱을 잡았다. 자신을 관찰하듯이 천천히 보는 그 시선과 욱씬거리는 흉터에 닿는 손가락에 고공은 곧바로 악몽을 떠올리며 얼굴을 구겼다. 구겨진 제 얼굴을 보고 호오가 웃는다. 아름다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 든다. 흉터가 아려온다.

 

"요새 아름다움이 빛을 잃어버리는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나보네."

"호오 대협, 손, 떼주십시요."

 

아프다. 흉터에 닿은 손톱이 제 상처를 헤집는 거 같은 착각이 든다. 밀려오는 광증을 꾹 참으며 뒷걸음친다.

 

"고공?"

 

숨 막히는 그 상황을 깨버린 것은 밭으로 다가온 주뢰의 목소리였다. 오늘, 오기로 했던가? 고공은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려 고개를 흔드는 사이 주뢰가 가까이 다가와 고공의 손을 붙잡았다.

 

"뢰, 어서오세요. 여기까지 오실 줄 몰랐는데 말입니다."

"근방에 올 일이 있어서 왔습니만은 근데 옆에 계신 분은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입니까?"

"아, 여긴 호오 대협. 네, 여기서 같이 지내는 이들입니다."

 

고공은 아직도 제 턱을 잡고 있는 호오의 손을 떼어놓고 장난이 지나치신 분이구요, 하고 말을 덧붙였다. 주뢰의 손과 고공을 번갈아 보던 호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심하게 자신을 보는 주로의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 그렇군. 저번에 말한 친우가 이 사람인가. 그리고 친우가 생겨서 아름다움을 잃어버린건가.

 

"끔찍해."

 

호오가 자신을 끌어당기자 고공을 더 얼굴을 구겼다. 당장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뢰를 보고 꾹 참아냈다. 호오의 손에 끌려간 고공의 손을 잡아 다시 자기 쪽으로 끌어 당긴 뢰가 호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끔찍하는 말이 그렇게 싫다는 티를 내는 사람을 자꾸 잡아 당기는 행위에 대해 소개 하고 있는 거라고 알겠습니다."

"그저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부터 지키려고 한 행동이었지."

"둘 다 제 손부터 놔주십시요."

 

고공이 작게 중얼거리다 싶이 하며 항의 해보았지만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 걸 느끼고 고공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생각하려고 해도 비명이 터져나올 거 같아 그걸 막는데 온 정신이 쏠려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대화는 이어진다.

 

"어쩐지 요새 공이가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거 같더니 그대의 짓이었나봐?"

"아름다움이요? 좀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계신 거 같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초승달보다는 상현달이, 상현달 보다는 보름달이 좋은데 대협은 어찌 흔들리는 사람의 위태로움을 두고 기쁨을 얻으시려는 겁니까?"

"그 위태로움에서 드러나는 진실된 표현이야 말로 아름다움이지. 그가 해야 할 감정 표현을 억압하지 않는게 더 좋지 않나?"

 

머리가 빙빙 돈다. 내 감정은, 내 광증은 내가 알아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안에서 흙맛이 나서 말이 안 나온다. 두 사람의 대화가 몇 번 더 이어진다. 머리가 웅웅 울리고 있다. 두 사람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뺀 그는 땅에 떨어진 제 삽을 들었다.

 

"들어가서 쉴 겁니다. 두 분은 그, 토론을 하던, 말던, 마음대로 하십시요."

 

억지로 발을 움직인다. 두 사람의 손에서 제 손을 빼버리고 밭을 나선다. 뒤에서 시선이 느껴져 따금거린다. 그래도 멀리 떨어지니 터질 거 같은 머리가 진정되는 거 같다.

 

"괜찮습니까, 고공?"

"아, 네? 네, 호오 대협도 가끔 저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요."

 

어느새 따라 온 뢰가 여전히 담담하게 자신을 보며 등을 두들겨주는 것에 그제야 고공은 평소처럼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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