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헤일로

미리 챙기는 크리스마스

notion5846 2024. 11. 20. 18:43

지구의 기념일이라는 개념을 헤일로는 아직 생소하게 느꼈다. 있는 건 안다. 하지만 왜 그걸 굳이 지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자신들의 인생이 달라지기라도 하나? 헤일로에게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도 크리스마스에 애인이랑 놀고 싶어!!"
"그날이 아니더라도 애인이 있으면 데이트를 할 수 있잖아요?"
"넌 가끔 되게 이상한 말을 한다? 그거야 당연히 기념적인 날에 기념적인 일을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게 좋지!!"


열변을 토하는 히어로를 보면서 헤일로는 그게 그리 중요한가 싶어졌다.

크리스마스

지구에 산 어떤 인간 때문에 생긴 날이라고 하는데 그거랑 애인이랑 무슨 관계인지 이해는 안 가지만 그런 걸 원하는 게 보통의 지구 생명체라면 자신의 사랑인 미테도 그걸 원하는 걸까?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헤일로는 크리스마스를 공부해 봤다. 별에 비하면 작은 모조품을 식물의 사체나 그 모조품 위에 올리고, 그 옆에서 음식들을 먹으면 이야기를 나누거나 거리를 걷거나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지구의 존재들은 정말 즐거운 걸까? 자신이 포식을 할 때처럼?

"자기~."
"한동안 방에 틀어막혀 있더니 드디어 나왔냐?"
"걱정했어요?"
"네가 사람도 아니고 걱정은 무슨."
"이거 오는 길에 샀어요."

품에서 꺼낸 꽃다발을 내밀어 본다. 사실 꽃은 다 거기서 거기로 보여서 대충 거기 있는 인간에게 아무거나 골라달라고 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이름이 장미라고 했던가? 붉은 색이 지구의 고기들을 떠올리게 해서 마음에 드는데 그에게는 어떠려나?

"갑, 갑자기 무슨 꽃을 주고 난리야."
"싫은 건 아니죠?"
"누가 싫다고 했냐?"
"그럼, 우리 이제 데이트 갈래요? 있죠, 지구인들은 특별한 날에는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한다면서요? 당신도 그걸 원할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날? 빼빼로 데이는 지났고 크리스마스는 아직 멀었어."
"알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연습한다고 생각해요."

얼굴 가죽을 움직여서 웃어 보인다. 꽃다발을 받아 든 그가 잠시 머뭇거리는 거 같더니 긴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게 효과가 있는 건가? 신기해라. 새로운 것을 알았다. 꽃잎을 만지작거리는 그를 데리고 앞장서서 걷는다. 예약했던 식당에 가고, 영화관에도 가본다. 사실 정보 수집의 의미도 없는 번쩍이는 빛 덩어리를 보는 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가 꽃다발을 끌어안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건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진짜 평범한 데이트네?"
"혹시 다른 걸 상상하셨나요? 으음, 다음에는 준비를-."
"아냐, 이 이상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마!. 이걸로 충분하니까."

그의 얼굴이 신선한 고기처럼, 손에 든 장미처럼 붉게 변한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아무튼 그래, 네가 공부를 잘해온 거 같네."
"정말요? 그러면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자기랑 나랑 좀 더 새로운 걸 해보지 않을래요? 우리 집에 가본다든가?"
"그 하얀 공간에서 뭘 할 건데?"
"당신과 나의 좀 더 농밀한 접촉?"
"그 접촉이 통상적인 의미의 접촉이 아닌 거 같이 느껴지는데 내 착각이냐?"
"자기, 제법 엉큼하네요."
"네놈한테 듣고 싶지 않아."
"그러면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가요. 그때에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가줘요."


꽃다발로 얼굴을 가린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특정한 날을 특별한 날로 삼고 그것을 기다리는 행위를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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