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봄이었다. 딱히 그리 맑은 날도 아니고, 미세먼지가 많았던 날이었다. 아보는 부모의 눈을 피해서 새로 이사 온 아파트 단지 안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잘 조성된 놀이터를 지나서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간 아보를 그가 불렀다.
"여기 위험해요."
그리 말하면서 지나가는 차를 가르키며 말을 건 그는 아보의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수상한 사람은 따라거가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걸 배운 나이지만 아보는 그보다도 자신의 감을 믿었다. 비록 얼굴에 흉터가 있지만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손을 잡기 전에 손 잡아도 되냐고 물어봤으니까 라는 굉장히 자기 멋대로 판단한 거지만 말이다.
아무튼 주차장에서 나오자 자신을 찾으러 온 부모님과 만났고 아보는 혼자서 돌아다닌 것에 대하여 혼이 나야했다. 그 뒤 그 남자는 등하교를 하는 아보의 눈에 종종 들어 오게 되었다. 놀이터나, 아파트 단지 안 정자에 앉아서 멍하게 있거나 자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백수예요?"
아보가 어느날 그렇게 묻자 그는 아주 잠시 고개를 옆으로 천천히 기우뚱 하더니 아니요,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을 가르켰다.
"야간 경비 일을 하는거라 낮에는 쉬는 거예요."
"백수인 줄 알았어요."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네요."
하하, 그가 짧게 웃음을 덧붙였다.
"그보다 이렇게 말 걸어도 됩니까?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쩔려고 그러나요?"
"얼마전에 엄마를 따라서 부녀회에 갔는데 거기서 아저씨 이야기를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였나요?"
"안 좋은 이야기들이었어요. 엄마가 중간에 증거도 없는 소문을 애 앞에서 함부로 떠들지 말라고 해서 다 못 들었지만요."
"소문이 사실일거라는 생각은 안 하나요?"
"이모가 그랬어요,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라고! 그리고 전 아직 판단 못했는 걸요."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소문을 믿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진짜 살인범이예요?"
마른 세수와 함께 얼굴에 드러나는 당황스러움을 아보는 보았다. 나지막하게 애 앞에서 진짜 무슨 소리를-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얼굴을 가린 손 틈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아보를 보았다. 그 말이 진짜일지도 모르잖아요, 하고 덧붙인 그가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걸 보면서 좋은 사람인가? 하고 생각했다.
"굳이-따지면 쌍방 폭,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 아보예요! 6학년이고요! 이제 중학생으로 올라가요!"
"남한테 자기 신상 함부로 알려주는 거 아닙니다."
"괜찮아요! 본명도 아닌걸요!"
지나가는 경비원을 부른 청년은 아보를 경비원에게 보내고는 사내는 총총 멀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아보가 그냥 넘어 갈 생각은 없었다. 그 뒤로도 가끔 그가 보일 때마다 아보는 말을 걸었고 그는 질렸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아보의 말을 받아주었다.
"근데 이모님한테 이야기를 하는데 아저씨 이름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별명도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이제 제가 중3으로 올라가는데 만난지 2년이 넘었는데 아저씨라고만 불렀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어디가서 중3짜리랑 친구라고 하면 전 진짜 잡혀 갑니다."
"우리가 나눈 대화라고는 제가 일방적으로 떠든 학업 이야기라든지, 학원 이야기라든지. 검도 대회 우승한 일이라든지, 아, 대회 우승 축하한다고 준 만년필 고마워요. 잘 쓰고 있어요. 아무튼 자기 이야기 안하는 거 알겠지만 이름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잖아요?"
"흠, 고공이라고 불러요."
"본명 아니죠?"
"아니죠."
"좋아요, 그래도 다음에 이모님을 만나면 이름을 말해줄 수 있겠어요."
"당신 이모도 당신처럼 말이 많을 거 같네요."
"이모랑 저랑 닮았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요! 그보다 엄마랑 이모랑 닮았다고도 하고요!"
재잘재잘 이어지는 소리에 귀를 막고 싶은지 고공이 손을 들었다가 내리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 이모라는 사람 어째 자신이 아는, 어머니 직장의 상사라는 사람이랑 성격이 비슷한 거 같은데 세상에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 참 많군. 자신의 어머니, 자신의 어머니의 상사, 이제 동네 꼬마까지.
"내년 전국 대회가 있는데 또 나갈거예요!"
"저번에 말한 검도 대회요?"
"기억하고 있었네요!"
"옆에서 종일 떠드는데 기억 못 할리가 없잖아요."
"응원하러 오실래요?"
"싫어요. 하지만 이기라고 말 정도는 해줄게요."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네. 아보는 제 감이 맞은 거 같아서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었다. 대회 일정을 말하자 흥미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가볼게요, 아보가 손을 흔들자 똑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일 또 만나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서도 대신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