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문에 이모님이 들렸다는 소식에 아보는 급히 의관은 단정하게 차려 입고 자신의 이모, 월담을 맞이하러 손님방으로 향했다. 시비의 손에 들린 다과상을 거의 뺏다 싶이 한 아보는 손님방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이모에게 인사를 올렸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예요."
"아보도 잘 지냈나요?"
호들갑을 떨자 아버지의 짧은 잔소리가 들렸지만 아보는 이모님 옆에 앉아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와 그것을 귓등으로 들으며 아이에게 인사를 건냈다. 아이는, 포권을 살짝 취하며 인사를 해왔다. 당연하게도 도사인 이모의 아이는 아닐테고, 아보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월담과 아버지가 아보에게 아이를 잠시 데리고 있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뭔가 안 좋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건가, 아보는 묘하게 무거운 공기를 느끼며 아이와 함께 정원으로 나왔다.
아이, 그러니까 자신의 이름을 고공이라고 밝힌 소년은 자신의 키보다 좀 더 큰 삽을 들고 있었다. 옷은 깔끔한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새것인 것이 보여서 아마 여기 오기 전에 이모님이 입혀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식사는 했나요? 이모님이 풀만 주신거 아니죠? 약과라도 먹어볼래요? 그 삽은 안 무거워요? 머리색 되게 특이하네요. 염색한건가요?"
"아뇨, 날 때부터 이 머리색이었습니다."
짧게 대답한 고공의 시선이 아보에게서 떨어져 아래로 향한다. 삽의 손잡이가 얼굴을 가린다. 그 탓에 얼굴에 있는 흉터가 살짝 가려진다. 아보는 고공에게 자신이 챙긴 약과를 내밀어 보았지만 고공은 고개를 흔들며 거부하였다. 이 묘한 거리감 뭐라고 할까,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난 걸 보는 기분이다.
물론 상대가 그렇게 가시를 세우고 거리를 두더라도 아보의 성격상 그런 것에 상처 받거나 하는 편이 아니었음으로 약와 차를 담은 그릇을 옆에 두고 삽에 관해서 더 물어보고 이모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면 고공은 산채에서 지낸거예요?""
"아버지가 산적이니까요. 산채 밖은 잘 몰라요.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인 걸요."
"혹시 이모님에게 화가 나거나 그런 감정은 없어?"
고공은 천천히 주위를 살피는 거 같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모인 월담이 산채 토벌하다가 발견했다고 아직 어리니까 발견한 월담이 거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 여기 있었네요."
"이모님!"
"고마워요, 아보. 고공, 기분 괜찮아요?"
"네."
"여기 마음에 들어요?"
월감의 물음에 고공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삽을 꼭 쥐고 정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보, 고공 어때요?"
"단순히 산적의 아이라고, 어려서 데리고 오신 건 아니죠?"
"어떻게 알았어요?"
"이모님이라면 아이를 거두어도 다른 맡길 곳에 맡겼지 이렇게 데리고 다니면서 챙기려고 한다는 건 그냥 아이인 것보다 다른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맞아요, 으음, 저 아이 모친이 제가 아는 무림맹의 다른 지부 일원이거든요."
정원의 꽃들을 보는 고공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이는 말에 아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부군 되는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사라져서 계속 찾고 있었다는데 머리색이 같아서 기억해낼 수 있거든요. 혹시나 해서 만나게 했는데 자기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거부 반응이 엄청났거든요. 그걸 보니 지금은 일단 따로 떼어둬야겠다 싶었는데 저도 바쁘고 제가 데려왔으니 저도 책임도 있는거죠."
이쪽을 본 고공과 눈이 마주친다. 아보는 손을 살짝 흔들어주었다. 저 삽 꼭 창처럼 보이네. 창술을 가르켜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아보 며칠만 부탁할게요."
게다가 이모의 부탁이기도 하니.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아버지에게 이미 말하고 온 거 같으니 괜찮겠지.
"미안해요."
"괜찮아요."
아보는 그리 말하며 고공을 불러보았다. 물론 돌아온 것은 애매하기 그지 없는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