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동연

notion5846 2025. 1. 9. 14:17

눈이 내린다. 차곡, 차곡 쌓인 눈 탓에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시야? 아, 이건 꿈이구나. 단소요는 내리는 눈을 보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꿈이라서 그런지 춥지는 않다. 그리운 하얀 풍경 속에서 단소요는 그리운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면서도 여전히 그리운 이들을 떠올린다.

 

-괜찮아?

 

바람 결에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멀리, 몇 미터 정도 떨어진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다. 밀려 오는 그리움에 손을 뻗어 달린다. 꿈인 주제에 눈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 푹푹 빠지는 발을 빼서 앞으로 향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에게 닿지 못한다. 지독한 꿈이지 않나. 결국 걸음을 멈춘 단소요는 휘날리는 눈 속의 그녀를, 부인을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그는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다.

 

-여전히 당신은 상냥하네요.

 

손을 뻗으려다가 그만둔다. 결코 자신의 그녀에게 닿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그녀는 자신과 같은 하늘 아래에 있지 않으니까, 죽은자와 산자는 만나지 못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당신이 나를 만나러 온 것만으로도 기뻐서, 눈물이 흘러 넘친다.

 

언제나 당신과 그 아이를 그리워 했다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그리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열려고 하면 누군가가 목을 쥐고 있는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그런 단소요의 말을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치만 최근에는 우리 생각 잘 안 들었지?

 

부드럽게,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돌아온다. 화를 내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기뻐하는 목소리다.

 

-당신이 앞을 보고 살아가고 있잖아. 우리만 생각하고 멈춘게 아니라 살아가고 있잖아.

 

기억 속 그대로 웃는다.

 

-그러니까 괜찮아. 당신이 하고 있는 그 고민 아마 그 아이도 하고 있을 걸.

 

장난스레 웃는 그녀의 뒤로 작은 그림자가 기웃거린다. 고민이라는 말에 단소요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그 옛날 모두가 나를 외지인이라고 부르고 거리를 둘 때 다가와준 것처럼 이번에도 당신은 먼저 말을 해주고 등을 떠밀어주었다.

 

-그 아이라면 괜찮아. 나도, 우리 아이도, 모두.

 

눈이 그친다. 욕심이 난다. 한 번 더 손을 뻗으면 나는 당신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안되겠지. 자신은 아직 살아 있다. 단소요는 눈을 감고, 꿈에서 깨어났다.

 

"오늘 따라 늦게 일어났네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었는지 봄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온다. 밖에 꽃들이 엄청 폈어, 하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한다. 아, 꽃내음이 난다. 동연의 말을 들어보니 풍경이 상상이 간다. 눈처럼 휘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동연이 서 있는 모습이.

 

"동연아, 이리 와보렴."

"응? 무슨 일인데?"

 

아무 의심 없이 다가오는 발소리와 목소리. 언제 이리 컸을까. 익숙하게 자신이 왔다는 뜻으로 제 손을 잡는 아이의 손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깨닫는다. 같이 지낸 시간이 몇 년이던가. 같이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이한 것이 몇 번째던가. 언젠가 어느 보부상이 자신과 동연을 보더니 사이가 좋아보이는 가족이라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단소요는 동연에게 두글자의 이름만 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붕 아래에 같이 밥을 먹고, 자고, 지내면서, 가르침을 주고 받으면서 사는 가족인데 그러면서 자신이 멋대로 성을 줘도 되는지 고민했다. 너무 멋대로 아버지가 되고, 아들로 삼으면 싫어하지 않을까 싶었다. 또 다시 잃어버릴 때가 두려웠다. 그렇지만 잃어버렸을 때의 두려움은 미리 걱정할 필요 없겠지.

 

"동연아, 내 이름은 원래 단소요가 아니었단다."

"어, 본명이 아니었다고?"

"원래 이름은 주령이란다. 허나, 이 이름을 받은 가문과 사문은 마교의 것이라 사특하기 그지 없어서 그런 이름을 너에게 줄 수 없구나."

 

붙잡은 손이 꼼지락 거린다. 슬쩍 손을 빼려는 것을 더 꼬옥 잡으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단소요라는 이름은 참으로 오래 걸려 돌아오기는 했으나 그래도 이 이름은 나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게 한 이름이란다. 비록 뿌리 없는 성씨지만 단동연으로 만족해 줄 수 있겠니?"

 

꼼지락거리던 손이 멈춘다.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서 그는 웃고 말았다.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아이의 대답을 그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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