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고 있던 손을 놓쳤을 때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아빠도, 엄마도, 형들도,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찾아주길 바랬다. 어쩌다가 놓친 그 손을 다시 잡아주는 이는 없었다. 내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하는 이만 있었다. 그 거리에 계속 기다렸다면 부모님이 다시 오셨을까? 듬직한 첫째 형이, 조용한 둘째 형이, 시끄러운 셋째 형이 왔을까?
알 수 없다. 거리에서 쫓겨난 아이는 그저 정신 없이 달렸다. 손이, 온기가 필요해서 정신없이 달렸다. 달리면서 잊었다. 부모님 얼굴, 헝제들 얼굴, 내 이름, 손의 온기도 기억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한 해, 한 해, 넘긴 것이 기적이다.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넘기면서 내가 배운 건 도둑질이었고, 구걸이었다. 나를 동정해도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 내가 온기를 느낄 일은 없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도 그렇게 지난 몇 년처럼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올해는 어떻게 하지?'
또 남의 집에 숨어 들어가거나, 짚이라도 모아서 몸을 웅크릴 곳을 찾아야 했다. 운이 좋다면 다리 밑에 자리 잡을 수 있을테고, 안쓰럽게 여기는 아낙이 안 쓰는 포대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정해야만했다.
"콜록, 콜록."
겨울이 오고 있어서 그런지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유난히 기침을 많이 하던 날이었다. 며칠 전 평과를 훔치다가 굴러서 다친 팔이 아팠다. 길 위의 아이들은 다 그랬다. 앓고나면 길에서 사라진다. 그러니까 나는 운이 좋았다. 쓰러진 나를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 주워줬으니까.
당신은 그냥 환자를 못 보고 지나치기 때문에 그랬을거야. 그치만 그 작은 행동에 나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살아남았다. 돈이 없어서, 혹시 추운 저 겨울에 다시 쫓겨날까봐 필사적으로 당신 옆에 붙어 있었다.
"돈은 괜찮단다."
"하지만 치료 해주셨잖아요, 신세지고 싶지 않아요!"
"이런, 정말 괜찮단다."
"잡일 같은 것도 잘해요!"
그리고 그건 내가 잃어버린 온기였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애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좋았다. 당신이 가끔, 누군지 모르는 이의 이름을 부르거나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겁을 먹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무서우도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너와 꽤 오래 같이 있었던 거 같은데 계속 얘야, 라고 부르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말이다."
"뭐, 어때요. 난 원래 내 이름 기억도 안 난다구요."
"그렇지, 동연으로 하자구나."
"뭘요?"
"네 이름 말이다. 우리가 만난게 겨울쯤이었으니까 겨울 동, 인연 연으로 써서 어떠냐?"
당신을 내가 잃어버린 것을 더 찾아주었다.
"아, 그렇지. 내 이름도 알려줘야겠구나. 단소요란다. 부모를 잃어버렸다고 했지? 나도 내 딸을 찾고 있단다. 같이 찾으러 가보자구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가을이, 겨울이 지나가고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면서 당신이 하는 행동도 익숙해졌다. 우린 가족을 찾는다고 했지만 나는 당신을 가족으로 인정했다. 당신이 찾는 딸이 발견되지 않기를 바랬다. 딸이 돌아오면 내가 떠나야 할까봐, 내가 다시 이 손과 온기를 잃어버릴까봐 무서웠다.
"내 딸이 이미 죽었다는 건 알고 있었단다."
그 고백을 들었을 때 당신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에 안도 했다. 꼴 사납게 웃는 내 얼굴을 틀림 없이 보기 흉했을테니까.
"연아, 내 정신이 온전치 않아 이것조차도 내일이면 잊고 다시 그 아이를 찾으러 갈지도 모른다. 예전이라면 세상을 떠도는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그냥 발이 가는 대로 갔었지만... 이제는 네가 내 곁에 있지 않더냐. 쉴 때도 되었지. 그러니 하나만 부탁하마."
손을 잡아준다. 온기가 느껴진다. 내 가족, 내 보호자, 내가 잡아줄 사람.
"내 곁에서 계속 나를 일깨워 주면 좋겠구나. 내가 네 말을 부정할 수도, 슬퍼할 수도 있으나 계속 곁에서 일깨워 주려무나. 그래야 내가 더이상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래주겠니?"
"내가 언제는 할배 손 안 잡아 줫습니까?"
하하, 웃음이 나온다. 당신의 손을 잡아 내 얼굴을 만지게 한다. 나는 지금 웃고 있어요. 아, 이제야 당신은 온전히 나만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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