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동연

뱀파이어&늑대인간 au

notion5846 2025. 1. 10. 23:52

한밤중에 눈이 내리는 공원이라니 어디 가수 뮤직 비디오에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연은 돌맹이 몇개를 주워서 던졌다. 휙휙 날라간 돌맹이는 CCTV에 박혀서 그 기능을 정지 시켰다. 이걸 고쳐야 할 시 예산이라든지, 수리 기사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괜히 찍혀서 골치 아파지는 것보다 낫다. 그렇게 공원 안으로 들어가 좀 더 걸어가자 눈 위에 그대로 남겨진 발자국들이 동연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발자국들 사이로 그가 보였다.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머리카락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흔들리는 불꽃처럼 보였다. 저렇게 흔들리고, 저렇게 꺼질것처럼 보여도 꺼지지 않는 불꽃.

 

"할배."

 

조용히 불러보자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텅 빈 눈동자와 마주친다. 뻐근한 목덜미를 만지는 동연에게 그가 물었다.

 

"혹여, 작은 여자아이를 보지 못했는가? 키는 이만하고-."

"할배, 그 애 죽었어."

 

말을 끊고 진실을 말한다. 말을 이어가던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 앞도 안 보일텐데 저럴 때마다 사실 보이는 거 아닌가? 싶어진다.

 

"오늘 처음 보는 이가 어째 그런 말을 하는가?"

"사실이니까요."

 

지팡이를 든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네놈에게서 짐승 냄새가 나는구나."

 

하늘을 보자 구름 사이로 그믐달이 보인다. 하다못해서 하현망이나 반달이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그가 자신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황급히 몸을 굴려서 피하자 허공을 가른 지팡이가 땅을 내려쳤다. 흙먼지가 일어나고 귀가 얼얼해지는 광음이 울렸다. 이크, 근처 주민이 들었을려나? 동연은 다시 자신에게 달려드는 단소요의 지팡이를 손으로 막았다.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뒤로 밀린다. 이 할배 여전히 현역이야, 같은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동연은 날라가는 자신에게 똑바로 찔러 들어오는 지팡이를 보았다. 저걸 그냥 맞으면 아무리 늑대인간이 자신이라고 해도 염라대왕이랑 잠시 대면하지 않을까? 땅에 발을 박고 두 팔을 들어 지팡이를 막아낸다.

 

푹 땅에 몸이 파묻힌다. 머리에 달려 있던 비녀들이 서로 부딪쳐서 짤랑거린다.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팡이는 무겁게 자신을 눌리고 있기에 동연은 땅에 박힌 자신의 다리를 꺼내 단소요를 발로 찼다.

 

이정도 타격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겠지. 거리가 벌어지자 그가 주춤거린다. 흐릿한 그의 백색 눈을 보며 동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죽었어요."

 

과거를 헤매던 눈이 현재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 긴 한탄 같은 소리를 내며 그가 지팡이를 떨어트렸다. 문득 동연은 그가 잃어버린 가족들이 부러워졌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그는 조금 당황해 하다가, 슬픈 표정을 짓을테지. 그치만 당신에게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심마처럼 남은 것이 아주 조금 부럽다.

 

"동연아, 내가 또 멋대로 나왔나보구나."

"눈이 오는 날이니까요."

 

동연은 나머지 발을 땅에서 빼며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단소요의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은게냐? 내가 힘을 너무 많이 쥔 건 아니겠지?"

"할배, 내도 이제 다 큰 성체 늑대인간인데 그거 맞고 죽겠습니까?"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의 지겨운 전쟁 속에서 당신이 설원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려 본다. 그러면서도 당신이 그것을 잃어버렸기에 어린 자신을 거둘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뼈라도 부러진 건 아니지? 정말 괜찮은거니?"

"어휴, 부러져도 할배가 고쳐주시겠죠."

 

능청스레 대답하는 동연의 머리를 단소요는 천천히 쓰담아 주었다. 지긋지긋한 전쟁에서 도망쳐서 만난 행복을 전쟁 속에서 잃고, 전쟁 끝에서 다시 만난 작은 행복. 언제나 늘 그 때마다 눈이 오고는 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잃는 날에도 눈이 올까. 생각이 다시 짙은 심마로 빠져 들자 거기에 맞춰서 다시 비녀가 짤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할배, 할배, 하고 목소리가 자신을 부른다.

 

"집에 가십다."

"그래, 그러자구나."

"목 안 마릅니까? 집에 아직 혈액팩이 남아있을거예요."

"참을만하다."

 

어느새 눈이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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