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서한결

한미-동거의 시작

notion5846 2025. 1. 11. 00:12

그날은 하늘이 흐릿하고 당장이라고 비가 올 거 같은 날씨었다. 손님도 많이 안 오고 금요일 저녁이었기에 오늘은 일찍 문을 닫을까, 싶어서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방울이 울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죄송한- 아, 한결씨?"

"벌써 마감한거야?"

 

노트북 하나만 들고 가게로 들어 온 한결의 등장에 미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에 걸린 표말을 닫힘으로 바꾸고 커튼을 내렸다.

 

"하지만 한결씨까지는 손님으로 봐줄게요."

"마지막 손님이라는 거야?"

 

장난스레 웃은 한결이 빵들을 둘러보더니 쟁반에 크림빵을 몇 개 올려놓고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 서서 한결을 보던 미료는 문득 한결이 맨발인 것을 깨달았다. 슬리퍼 같은 걸 맨발로 신은 것도 아니고 양말을 신고 있는데 신발이 없다.

 

"한결씨, 신발은 어디 두고 온거예요?"

 

그제야 한결의 시선이 제 발로 향하더니 아, 하고 짧은 소리를 낸다. 그러게, 하면서 대답한 한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맙소사, 평소에도 가끔 나사 빠진 것처럼 굴더니 이젠 신발을 벗어두고 오다니. 포스기를 만지던 미료는 다소 멍하게 있는 한결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으으음, 말하면 부담스러워 할 거 같아서 말 안 하고 싶어."

"무슨 일이 있다는 거네요."

 

부담을 주고 싶은 건지, 안 주고 싶은 건지. 한결의 애매한 대답에 미료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큰일이에요?"

"아니, 그리 큰일, 인가?"

"무슨 일인지 말을 해봐요."

 

미료는 한결을 잡아 빵집 한 쪽에 마련해 둔 의자에 앉혔다. 크림빵을 입에 넣고 천천히 우물거리며 노트북을 펼친다. 쓰다만 것 같은 원고를 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엎어진다. 마감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 건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주자 얌전히 받아 마신다. 아주 나지막하게 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모르는 척하며 한결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전에 추석이었잖아."

"네."

"그래서 친척이 안 오냐고 전화가 온 거야. 아니, 우리 부모님도 이제 나한테 오라고 안 하는데 왜 거기서 오지랖이야. 그래서 전화를 먼저 끊었더니 친척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또 부모한테서 전화가 온 거야."

 

그리고는 다시 말이 없어진다.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보더니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러보니 전에도 아버지랑 싸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이사 가고 싶다. 그 인간 때문에 이웃들한테 미안해 죽을 거 같아."

 

아, 또 싸웠구나.

 

"그치만 요새 이 근방에 이사할 곳이 있어야지."

"요샌 월세도 비싸죠."

"그렇다고 다른 지역 가기도 싫고, 회사하고 같은 지역에 있어야지."

 

긴 한숨을 끝으로 완전히 크림빵을 다 먹은 한결의 손이 멈춘다. 싫다, 하고 중얼거리는 한결을 보던 미료가 입을 열었다. 장난스레, 선글라스 넘어 눈을 빛내면서.

 

"같이 살래요?"

 

이제 자신을 보고 완전히 멈춰버린 한결을 보면서 그 입에서 나올 대답을 미료는 즐겁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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