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뢰, 뢰, 일어나세요."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자 뜨거운 햇살이 비춰지는 마당이 보였다. 괜찮아요, 라고 옆에서 묻는 이가 자신의 친우인 것을 확인하고 주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보니 언제 돌아 온 거지? 그것도 친우와 함께? 멍하게 있는 주뢰를 보면서 웃음을 터트린 친우는 그의 손에 서류 더미를 넘겨주었다.
"뭘 그리 넋을 놓고 있습니까, 뢰?"
환하게 웃는 친우의 얼굴이 묘하게 낯설어 보였다. 활짝 웃는 얼굴과 흉터 하나 없는 얼굴. 늘 본 얼굴인데 오늘 따라 왜 이리 낯선 건지 모르겠다.
"혹시 뢰, 더위라도 먹었나요? 날씨가 많이 덥기는 덥나 봅니다. 당신이 이리 멍하게 있다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런가 봅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서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서류를 정리하고, 처리하고, 손님이 오면 안내하고, 어머니와 가볍게 담소를 나누고, 근처에 순찰을 돌고 평소 같은 하루를 보낸다.
"진짜 덥네요. 아, 밤에 마을에서 축제한다고 하는데 일 끝났으면 구경 갈래요?"
"좋아요, 유혼이야 말로 일 다 끝냈나요?"
"당연하죠."
돈 주머니를 챙겨서 나오자 아직 열기가 남은 공기가 뺨에 닿는다. 시끌시끌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달짝한 간식거리의 냄새도, 알록달록한 풍등들이 하늘에 떠 있다. 멋지네요, 하고 말하면서 친우는 당호로를 들고 와서는 하나 내민다.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함과 함께 올려다 본 하늘에 풍등과 별들이 어울리는 멋진 풍경이 보인다.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친우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따라가던 그의 손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고개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 평소처럼, 기억 속 모습처럼 웃으면서 주뢰를 붙잡은 그는 주뢰의 머리를 한 번 쓰담아 주었다.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온 거니?"
"네, 급한 일은 다 끝냈습니다. 아버지도 축제를 보러 오셨나요? 어머니를 두고 혼자 나오시다니 어머니가 서운해 하시겠어요."
"괜찮아, 그녀는 늘 지켜보고 있는 걸. 무엇보다 내가 보기에는 넌 아직 할 일을 다 못 한 거 같구나."
"서류 중에 뭐가 빠진 서류가 있나요?"
"그건 아니란다. 넌 다른 걸 잊고 있잖니?"
무림맹 일 말고 해야 할 일이 있었나?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어디로 가신 거지? 이렇게 말도 없이 떠날 분이 아니신데. 떠난- 떠나는, 건.
"뢰, 저기에서 공연을 한답니다. 무슨 공연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곁에 다가온 친우가 환하게 웃는다. 평화롭기 그지 없는 풍경이다. 친우가 있고 자신은 맹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친우도 곁에 있는 생활, 언젠가 한 번 상상해 본 적 있는 생활.
"주뢰, 그러니까 같이 갑시다."
상상해 본 생활?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갸우뚱하면서 주뢰는 친우를 돌아보았다. 활짝 웃는 얼굴, 흉터 하나 없는 얼굴. 주뢰는 손을 들어 무심코 친우의 턱에 손을 올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친우의 행동이 자신이 아는 행동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만지는 걸 싫어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뢰, 떠나지 말고 같이 있어요."
떠나지 말라는 말에 주뢰는 웃음을 터트렸다. 새장을 떠난 건 자신이다. 새장을 돌아갈 곳으로 정한 건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머물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괜찮습니다, 유혼, 아니, 고공. 저는 언제든지 돌아갈겁니다. 떠나 있어도 집은 늘 그리우니까요. 그리고 이제 돌아갈 곳이 더 생겼으니까요. 당신한테도 찾아 갈테니 또 저를 기쁘게 맞이해주세요."
흉터가 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친우가 손을 흔든다. 그리고 이윽고 주뢰는 잠에서 깨어났다.
"하아."
탁탁, 소리를 내면서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모닥불과 그 위에 올려 둔 찻주전자가 보인다. 주뢰는 자신이 간밤에 마신 차가 든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역시나 환몽초 말린 것이 찻잎 사이에 섞여 있다. 먹으면 현실 같은 꿈을 보여준다는 꽃인데 찻잎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니 자신이 그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쓴웃음을 흘리며 주뢰는 찻주전자를 정리하고 뜨는 해를 보며 기지개를 폈다. 아, 불현듯 집이 그리워졌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 어머니를 만나고, 그래, 친우도 만나러 가자. 틀림없이 두 사람은 반갑게 자신을 맞이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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