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고공&의진

선인장

notion5846 2025. 1. 15. 16:09

모든 사람은 배신 한다. 정파든, 사파든 사람인 이상 변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적의와 살의를 보여주던지, 자신에게 무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림채는 자신에게 무심하기에 지내기 편했다. 그렇기에 고공은 작물을 판 돈이 든 주머니를 잃어버렸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굳어졌다. 유소가 파를 들고 자신의 등짝을 열심히 두들겨 패겠지.

 

"대협,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아, 대협. 제가 아무래도 조금 전 싸움에서 주머니를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고공은 한숨을 내쉬면 제 옆의 사내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 객잔에 앉아 있다가 벌어진 싸움판에 말려든 자신을 도와준 사내. 바로 그 전에는 자신이 팔고 있던 작물을 사간 사내. 외견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럴 때 다시 마주치다니 참, 자주 얼굴을 보인다고 고공은 그리 생각하며 대답했다.

 

"대협, 돈이 급히 필요하십니까?"

"일단 제 개인 돈이 아닌지라."

 

채주의 돈이지. 농작물 판 돈. 대파로 맞는다면 참 아프겠지. 싸움하던 놈들 전부 도망간 이 상황에서 다시 찾는 건 무리인 건 알고 있다. 오랜만에 약탈을 다시 해야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고공은 사내의 손등에 난 상처를 보았다. 방금 싸움에서 난 상처인지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고공은 참지 못하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다치셨습니까? 제가 지금 가진 것은 붕대 뿐이지라 감아 드릴테니 의원에 가서 제대로 약을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제 싸움에 휘말려서 생긴 싸움이니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흠, 대협 혹시 돈이 급하신거면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제안이요?"

"제가 가야 할 곳이 있는데 혼자 가기 힘드니 대협께서 제 호위로 같이 가주신다면 제가 잃어버린만큼의 돈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얼마를 잃어버렸는 아시지도 못하시면서요?"

"얼마든 상관없습니다."

 

상대와 눈이 마주치고 고공은 손에 붕대를 감아주던 것을 아주 잠시 멈췄다가 움직였다. 이것은 호의인가? 아니면 꿍꿍이가 있는 거짓말일까. 허나, 이대로 돈을 가져가지 못하면 청림채에 폐를 끼치는 것이다. 고민하던 고공은 청림채로 보낼 전서구를 하나 쓰고 그렇게 사내와 동행하는 길에 올랐다. 물론 사내가 약속한 돈을 안 주거나 꿍꿍이가 있다면 고공은 기꺼이 폭력을 행사할 생각도 했기에 동행하기로 했지만 말이다.

 

사내는 제 이름이 모용주뢰 라고 하였다. 먼 방계라고 소개하는 상대를 보며 고공은 참 사람이 밝다고 생각했다. 밝은 겉모습으로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몰라도 그도 돌변할지도 모른다고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아,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 그는 자신을 볼 때 마치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다.

 

그 안에 신뢰가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대협은 참 특이하네요."

"그런가요?"

 

뢰는 웃으며 고공이 막 피워 낸 모닥불을 보았다. 자신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찾던 사람이 눈앞의 그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데려가기로 한 이상 뢰는 그를 관찰하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가장 먼저 들왔지만 곧바로 알았다. 하는 짓은 완전히 사파나 다름 없었다. 오는 싸움 피하지 않고, 상대에게 아무렇지 않게 무기를 겨누고 휘두른다.

 

그러면서도 그가 가진 검술이 점창파의 검술하고도 유사하여 뢰는 약간의 의문을 가졌지만 곧 어머니의 지인이 부탁한 일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그 의심을 고이 접어두었다. 어머니의 지인이 말하는 아들이 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테니까.

 

"전 대협이 저를 팔아먹을 인신매매범이라고 해도 안 놀랄겁니다."

"고 대협, 아무리 우리 사이에 신뢰가 없다고 해도 제가 그리 악한 자로 보입니까?"

"원래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법이죠."

 

신뢰를 주고 받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쨌든 꿍꿍이가 있어서 데려가는 것이었으니까. 마냥 찾던 이가 아니라면 돈만 쥐여주고 다시 돌려보내고 잊으먼 된다.

 

"어서오렴, 먼 길을 오느라 수고 많았어."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손님, 이 있었구나."

"같이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먼길 오느라 힘들테데 들어와서 식사라도 하고 가는 건 어떤가요?"

 

어머니의 제안에 그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는 싶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었다. 곧 멀어지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마 그 아는 분을 데리고 오시겠지, 라고 짐작하였다. 돈 주머니를 챙겨서 그를 방에 앉힌지 얼마나 시간이 되었을까 방문 밖에 들리는 목소리에 가만히 있던 고공이 얼굴을 굳혔다. 뢰가 문을 열었고 그 밖에는 그의 어머니와 처음 보는 분홍머리 여인이 있었다.

 

"혼아!"

 

반가운 얼굴을 보이는 여인의 부름에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뢰가 돌아보자 고공은 빤히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고 있던 얼굴이 천천히 무너지며 그 얼굴에는 곧 경악으로 가득 차는 것이 보였다. 한쪽은 무척이나 반가워 하고, 한쪽은 경악하고 무서워한다? 천천히 무너져지는 고공의 몸을 붙잡는 뢰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틀림없어요, 이모님. 제 아들이예요."

"진정하렴, 피곤해서 쓰러졌을수도 있어. 다시 깨어나면 천천히 만나보도록하자. 우리 조카님부터 진정해야 겠는 걸."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쉬시고 오십시요."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배웅하고 방에 돌아온 뢰는 여행 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가끔 악몽을 꾸는지 끙끙거리던 소리라든지, 쓰러기 전에 보여준 경악에 깃든 공포라는 감정까지. 어머니가 아들에게 몹쓸짓을 하는 이를 조카로 맞이했을리는 없고 무슨 사정이 있을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누워 있던 고공이 벌떡 일어나더니 주위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대협, 알고 했는지, 우연인지 몰라도 최악의 상황을 주셨군요."

 

비틀거리며 자신의 짐을 향해 손을 뻗는 그 모습을 도망치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냥 둔다면 어머니의 지인이라는 사람은 슬퍼할테고 어머니도 같이 슬퍼하시겠지. 그는 문 밖으로 달아나려는 고공을 잡아 밧줄 대신 이불을 가져와 그를 둘둘 말아 다시 침대로 올려두었다.

 

"최악의 순간이라니 그거 유감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치신다면 정말로 최악으로 남을테고 견디신다면 최악보다는 덜 하지 않겠습니까?"

"최악을 굳이 견딜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무엇을 그리 두려워 하십니까? 그저 어머니랑 조우한 단순한 상황 아닙니까?"

"어머니요? 아니요, 고공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녀가 찾던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 착각입니다."

 

이를 뿌득 갈면서 중얼거리는 말은 마지막 단어를 내뱉을 쯤에는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하듯이 작게 몇 번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조금 딱한 마음이 들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고공이 도망가지 않겠다고 다시 말을 하고 나서야 뢰는 그를 풀어주었다.

 

"처음부터 저를 알고 있었습니까?"

"대협이 찾던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대협에 대해서는 같이 여행하면서 보여주신 모습 말고는 모르니 어떻게 된 것이지 저에만 알려주실 수 없습니까?"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턱에 있는 흉터에 손을 올렸다.

 

"주유혼은 자신이 자란 문파도 좋았고, 어머니도 좋아했고, 그리고 자신의 윗배분이었던 사형도 좋아했답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하듯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표정이 평소처럼 웃는 얼굴이 된다 싶더니 좀 더 과장스레,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눈동자와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주유혼은 죽었습니다."

"고생이 많았군요. 하지만 대협, 정말 도망치고 싶으십니까?"

 

뢰의 눈을 보며 고공은 과장스러운 자세 그대로 몸을 굳혔다.

 

"살아 숨쉬는 건 땅 위의 우리들인데 망자를 잊고 태양을 보시면 아니되시겠습니까?"

 

고공은 뢰를 보았다. 혐오할거라고 생각했다. 정파니까, 선한 사람일테니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을 밀어낼테고 자신은 마음 편하게 도망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태도는 자신을 동정 같은 걸 하는 것이 아닌 여전히 관찰하고 있는 것만 같은 눈이었다. 아, 그 눈. 조용히 자신을 보는 눈에 침착해졌다. 결국 처음으로 자신의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말하였다.

 

"이 강호 자체가 미친 것을 사람 한 둘 더 미쳤다고 이상하다 받아들여야 되겠습니까. 처음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름을 새로 지으셨듯이요. 사랑이 무섭다면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다만 그 선택도 만나야 가능하다는 것은 대협께서도 아시겠지요? 대협의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 이야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십시요."

 

지금까지 주유혼이었을 때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공이었을 때에는 무관심과 조롱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걸까. 오히려 자신을 무심하게 보는 저 눈이 편한 것은. 자리에 앉은 고공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뢰는 차를 건내었고 고공은 그 찻잔을 조심스레 받아들였다.

 

"대협은 이제 다시 떠나십니까? 저를 지옥에 밀어넣고 떠나시는군요."

"제가 입은 무거우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일은 어머니께도 비밀로 하겠습니다."

"말을 나눠봐야겠죠."

"잘되었군요. 저는 다시 떠나고 싶을 때까지 머무를 겁니다. 대협께서도 일이 정리되면 저와 함게 가시겠습니까? 지내시던 곳까지 바래다 드리기겠습니다."

"아, 잊고 있었네요. 돈은 받을 겁니다."

"물론 드려야죠."

 

차를 한모금 마시자 속이 편해진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그래, 이야기를 끝내면 일단 청림채로 돌아가야지. 유소에게 돈을 건내주자.

 

"모용 대협 괜찮으시면 같이 떠나시죠."

"좋습니다. 어차피 제가 데려왔으니 데려다 주는 것도 제가 해야죠."

 

그가 괜찮다면 그 뒤에도, 혹시, 괜찮다면 함께 다녀보는 것도, 그 말을 차와 함께 삼키며 고공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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