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다. 고공은 눈을 뜬 상태로 제 몸 상태를 직감했다. 조금 아픈거라면 꾹 참고 밭으로 나가겠지만 아, 이건 무리. 목소리 조차 나오지 않고 조금 움직였는데 근육이 쑤신다. 이럴 때에는 걍 누워서 자는 것이 최고인 걸 알기에 고공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종이를 찾아내 '아픔. 오늘 쉽니다.' 하고 쓰고 그것을 방문 앞에 붙이고 문을 잠그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확실히 몸이 좋지 않았는지 금세 의식이 혼미해져, 꿈 속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제 몸 위를 누군가가 밟고 춤춘다. 누군가가 아니다, 사형이다. 아, 제발 좀 내버려둬요. 그리 중얼거려 보지만 한 번 눌린 가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기어나오지 못하게 더 깊이 묻어야겠다.
입 안에서 흙맛이 난다. 짜증과 공포에 파묻혀서 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 치고 있으려니 쿵쿵, 소리가 들린다. 사형이 자길 밟고 있는 소리인가. 잠이라도, 푹 자게 해줘요. 중얼거리는 사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더 커지더니 곧 뭔가 부숴지는 소리가 났다.
"들어갈게~."
그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가위가 풀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고 보니 소리를 낸 원인으로 보이는 경첩이 떨어진 문과 쟁반을 들고 있는 호오가 보였다. 왜?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잠긴 목에서는 쇠 긁는 소리만 나와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누울려고 했다.
"아직 밥 못 먹었지? 벌써 오후인데 뭘 먹어야지 기운이 날 거 아냐~?"
팔을 교차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호오는 성큼성큼 다가와 쟁반을 고공의 앞에 내내려 두었다. 뜨거운 김 사이로 보이는 그릇 안은 검은색이었다. 질퍽해 보이는 진흙을 퍼담은 것처럼 보이는 검은색. 아직 부글부글거리고 있는 검은색 사이로 흰색도 얼핏 보인다. 아마 목이 멀쩡했다면 고공은 독이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손에 숟가락을 쥐여 준 호오는 굳어서 죽 그릇을 내려보는 고공을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감한 표정으로 그릇과 자신을 번갈아 보는 것이 꽤 아름답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더니 당장이라도 뭔가 말하려는 듯이 입을 뻥긋거리다가 숟가락을 들어 죽을 입 안에 밀어넣는다. 나름 간에 신경 썼는데 입맛에 맞았는지 얌전히 숟가락을 움직인다.
"곧 약도 가져올테니 그것도 먹도록 해."
약 이야기에 고공이 기침을 몇 번 하더니 쇳긁는 소리를 내며 질문을 던졌다.
"독이요?"
"독을 넣을거라면 죽에 넣지 않았을까?"
미간에 다시 주름이 생긴다. 어이 없다는 듯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는 고공은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나지막하게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호오 자신을 향한 볼펜소리 같이 들려서 그는 기분 좋게 약을 가지러 갔다.
호오가 자리를 비우고 그릇을 비운 고공은 땀에 축축해진 옷을 갈아 입고 새 이불을 꺼내 침대에 앉았다. 호오가 가져오는 약이라니, 진짜 독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하, 그런 생각을 하고는 고공은 침대에 몸을 기댔다. 저 멀리 호오의 발소리가 들린다.
뭐, 사형이 제 위를 뛰어다니는 것보다 낫지. 쓴 냄새가 벌써부터 나는 거 같다. 활짝 열리다 못해서 부숴진 문에서 부는 바람에 묘한 시원함에 고공은 조금 편한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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