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어른들 말대로 우리가 혼인할거라고 생각했다. 함께 살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는 나와 같이 떠나자고 했다. 그건 별로였다. 나는 마을 떠날 생각 없었고 너는 귀걸이 한짝만 남기고 떠났다. 우린 서로를 거절한 것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청현!!'
10년 간 쌓인 것은 멋대로 떠나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이었기에 그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후려쳤다. 10년이 지났지만 어쩜 그리 변한 거 하나 없는지. 사람 좋게 웃는 얼굴에 한 번 더 등짝을 후려쳤다.
"안 돌아오는 거 아니었어?"
"안 돌아온다는 말은 한 적 없는 거 같은데 말이지."
넉살 좋게 웃으며 때리려는 손길을 피한다. 머쓱하게 웃던 그의 얼굴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와서 왜 돌아왔지? 이미 마음 정리를 다 한 자신인데 새삼 다시 떠나자고 하려고 하나? 그런 심정에 다시 거절을 하기 위해서 마음을 다 잡는 순간 그가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여전히 웃으며 그는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렸다. 주머니 안에는 당연하게도 귀걸이가 들어있었다.
"제대로, 정리하고 싶어서 왔어. 혹시 나 기다리고-."
"안 기다렸어, 멍청아."
다시 한 번 등짝을 때리려고 하자 훌쩍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그의 뒤에 서 있던 다른 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그가 조금은 불편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서서 청현의 등을 쓰담아 주고 있었다. 여행길에 만난 친우인가 싶어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자 가볍게 포권하며 인사해 온다. 설이라니 새하얀 머리카락 같은 이름일세.
"청현 대협 괜찮습니까?"
"걷어 차이는 게 아니라 다행이지. 그러니까 얼굴 풀어, 설."
청현이 손을 들어 상대의 뺨을 가볍게 툭툭 친다. 청현의 오른쪽 귀를 다시 본다. 새하얀 옥으로 만든 거 같은 귀걸이가 걸려 있다. 설이라고 소개 받은 이를 쳐다보니 왼쪽 귀에 호박으로 만든 거 같은 귀걸이가 걸려 있다.
"그래서 인사하러 다시 고향에 들린거야?"
"뭐, 정리도 하고 부모님한테도 인사도 하고 다시 떠나야지."
"어디로 가는데?"
"글쎄, 북해라도 갈까 싶어서 생각중이야."
"그 먼데를?"
이야기를 나눌수록 뒤에 있는 백발 남자의 얼굴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가 풀렸다가 한다. 하하, 하긴 10년이면 그런 풋사랑을 과거의 추억이 될만도 하지! 이번에는 청현을 등을 응원의 의미로 두들겨 주었다. 10년 동안 앓은 게 휙 빠진 기분이다.
"그만 때리시죠?"
"미안해요. 아아, 며칠 머물다가 갈거지?"
"아마, 도?"
손 안에 있는 주머니는 무척이나 가볍다. 하긴 나도 다른 한쪽의 귀걸이를 어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집 구석 어딘가에 있겠지만 찾을 필요는 없겠지. 손에 든 주머니를 그에게 다시 던졌다.
"네가 버려, 멍청아."
그리고 여전히 얼굴을 구기고 있는 하얀 머리의 사람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쟤를 뿌리내리게 하다니 재주가 좋네요."
무슨 이야기 하냐는 표정을 하는 청현의 등을 때리다가 미간을 찌푸르는 하얀 머리의 얼굴을 보고 손을 내렸다. 잘 어울린다 싶어서 웃음이 그대로 터져나왔다. 맙소사, 짚신도 제 짝이 있다더니 틀린 말 하나 없다는 걸 깨닫는 하루가 되었다. 집에 가서 귀걸이를 찾아보자. 그것도 버리자. 나도 내 짝이나 만났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