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이청현

설청

notion5846 2025. 1. 13. 23:53

아침에 눈을 뜨면 시비들이 다가와 씻겨주고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는다. 설이가 일하는 걸 보고 점심을 같이 먹고 그 뒤에는 자유 시간. 멍하니 설궁을 돌아다니면서 청현은 문득 자신이 얼마나 여기 있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여기서 이렇게 보낼 수 있는 것도 설이 덕분 아닌가. 설이의 손님, 설이의 연인이니까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관계가 끝나면 당연히 여기서 나가야겠지. 미리 준비라도 해야 할까.

 

"청현 소협, 산책 중이었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빙궁의 주인인 궁주가 서 있었다. 황급히 인사를 올린 청현에게 궁주는 편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그의 옆에 섰다.

 

"설이가 편하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충분히 과분하게 대접 받고 있습니다."

"설이한테 듣기로는 긴 시간 여행을 하셨다지요?"

 

청현은 자연스레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하긴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양민이랑 소궁주가 어울리는 것을 이만큼 참았으면 충분했겠지. 자신에게 경고를 하려고 굳이 온 걸까? 청현은 천천히 궁주를 돌아보았다. 사람 좋아 보이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이가 당신을 데리고 왔을 때 솔직히 놀랬습니다. 다른 관계도 아니고 연인이라고 말할 줄은 몰랐거든요."

"어쩌다 보니 연이 닿아서 그리 되었습니다."

"업무를 보다가 갑자기 당신이 보고 싶다고 하지를 않나, 같이 뭘 했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나 그리 웃는 건 참 오랜만인 거 같더라구요."

"그렇, 습니까."

"하지만 소협은 여행자라고 하셨죠. 좋아합니까, 여행?"

 

좋아 하냐고? 좋아하지. 길 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 모든 풍경들, 모든 상황들을 좋아한다. 한 자리에 이리 오래 머물고 있으면 답답할 정도였다. 설궁에서 이렇게 오래 머문 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이지 않나. 여긴, 설이 옆에서는 떠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지만 떠나길 바란다면 떠나야겠지?

 

"다시 떠날 생각은 하지 들지 않소?"

"지금은 설이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설이가 그대의 닻이 된 셈이구려."

"그런 셈입니다."

"청현 소협 그렇다면 설이가 청혼한다면 받을 생각이 있으십니까?"

 

떠나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던 청현은 궁주의 입에 나오는 그 말에 그대로 헛기침을 토해내며 그를 돌아보았다.

 

"저는 남자입니다."

"그렇지."

"양민이고요. 무림인도 아닙니다."

"설이가 옆에서 지켜줄테니 무슨 상관인가."

"저는 후계자도 못 낳습니다."

"설이만 있는 것이 아니니 걱정 말게나."

"다른 이들이 싫어할겁니다."

"누가 싫어한다고 그러나. 있다고 해도 누가 티를 내겠소."

 

머릿속에 자연스레 혼례식 풍경이 떠오른다.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주위에 퍼져 있는 추위마저 잊게 만든다. 그럴리가, 설이와 자신이? 자신이 온전히 뿌리를 내린다? 그건, 뿌리를 내리는 건 좋다. 하지만 설이가 자신을, 그렇게-

 

"청현~."

 

멀리서 다가오는 목소리와 발소리에 궁주가 기분 좋게 웃더니 먼저 자리를 떠나는 것을 배웅조차 하지 못한 청현은 곧 눈 속에서 모습을 드러 낸 자신의 연인과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달려 온 설이 청현을 손을 잡더니  웃는다. 자연스레 그의 귀로 시선이 옮겨진다. 자신과 나눈 한쌍의 귀걸이가 저를 붙잡는다.

 

"청현, 꼭 할 말이 있어서 이리 왔습니다. 좀 더 분위기 있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결심이 생기니 참을 수가 없더군요."

 

하얀 옥으로 만든 반지가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진다. 설이의 손에도 반지가 끼워져 있다. 휘날리는 눈발과 하얀 머리카락이 어울려져서 다시 한 번 설레게 만든다.

 

"청현, 청현, 당신이 언젠가 떠날거라고 생각하면 심장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릅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그걸 포기하라고 하는 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우린 갔다가 다시 여기로 올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하고 결혼해줘요, 청현."

 

그날 설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했을 때 든 생각이 있었다. 당신이라면, 언 땅이라도 뿌리를 내려도 괜찮다고.

 

"청현?"

"귀걸이는 나를 붙잡는 손이고, 반지는 나를 당신과 묶어두는 말뚝이니 나는 이제 더 이상 부평초가 아니라 당신 곁에 머물 든든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상대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홍조를 보며 둘 다 웃음을 터트렸다. 해야 할 일이 갑자기 너무 많아졌다. 하지만 괜찮겠지, 괜찮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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