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고공&의진

주공

notion5846 2024. 11. 22. 17:47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머물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피던 주뢰의 눈에 다른 나무들 보다 몇 백살은 더 산 거 같은 거대한 나무가 보여 그 밑에서 신세를 지기로 결정하고 다가가자 거기에는 친우가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나 있는 뿌리 틈에 몸을 파묻고 숨을 헐떡이는 친우의 모습에 그는 황급히 다가갔다. 가슴팍에 난 베인 부상을 혼자 지혈하다가 혼절했는지 피가 흐르는 모습에 주뢰는 자신이 가진 면포와 금창약을 꺼내 상처를 치료하고 주위를 살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복면인 한무리의 시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전투를 벌이다가 도망친건가? 주위에 더 기척이 없는 걸 보니 잔당은 없는 거 같고, 상처가 덧날지도 모르니 좀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열이 끓던 몸은 다행스럽게도 지혈이 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안정을 찾아갔다. 그렇다면 이제 마을을 찾아 좀 더 쉬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뜨는 해와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 하는 고공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고공이 청림채 밖에 있다는 건 배달 때문일테니 적어도 청림채에 이런 일이 있다는 건 알리는 걸 먼저 할까?

이어지던 고민을 멈추게 한 것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살기었다.

"고공, 저 입니다."

자신의 친우가 부상 탓에 혹여 착란 상태에 빠졌나 싶어서 조심스레 입을 열며 고공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일어난 그의 몸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향해 달려들듯이 몸을 긴장 시킨 친우의 눈에 담긴 감정이 쉽게 읽혔다.

적의와 경계가 섞인 눈으로 주뢰를 보던 그가 숨을 크게 내쉬며 웃었다.

"제 이름을 알고 있는 거 보니 산채 분들이 드디어 저를 처리하라고 부른 모양입니다?"


명백히 빈정거리는 어투로 말하고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주저 앉아버렸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만은 그대로다. 주뢰는 무심코 처음 만났을 때에의 고공을 떠올렸다. 그 때보다는 좀 더 사나운 거 같은데, 자신을 노려 보는 진득한 시선에 그는 살짝 두 손을 들고 거리를 벌리고 뒤로 물러났다.

 

"제가 당신을 해하려고 했다면 치료는 하지 않았겠죠. 상처가 심합니다. 믿어 달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적어도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지켜보게 해주십시요."

 

대답은 하지 않지만 몸을 일으켜 대충 나무 뿌리 위에 힘겹게 몸을 눕히고는 고개를 돌린다. 모용주뢰는 좀 더 뒤로 물러났다. 그러보니 옛날부터 맨땅에서 자는 걸 꺼려했지. 새삼스레 고공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주뢰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머물 준비를 하였다. 피부를 쿡쿡 찌르는 시선과 경계를 모르는 척 하며 얼굴은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가 드리는 약은 못 믿으실테니 근처에 같이 약초를 캐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당신 누구십니까?"

"말 한다고 해도 믿지 못 하실 성격이시 않나요? 제가 솔직히 말해도 믿지 못하실테고, 저 또한 괜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으니 그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이 어떻습니까?"

 

납득을 한 것인지 시선을 거두는 것이 느껴졌다. 긴 탄식 같은 숨을 헐떡이는 가지고 있는 약이든 뭐든 주고 싶지만 결코 받지 않을테고, 오기라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버티겠지. 주뢰는 모닥불을 피워두고 자신의 모든 짐까지 옆에 내려둔 다음 주위를 살펴보기 위해서 자리를 떠났다. 다시 전투가 벌어진 곳에는 여전히 시체가 널부러져 있고 다른 기척이 없는 걸 보니 남은 패거리들은 없는 거 같고, 길에서도 벗어난 숲인데 어쩌다가 전투가 벌어졌는지, 자신이 아는 고공의 무위도 약한 편이 아닌데 그런 부상을 어쩌다가 입은건지.

 

계속 생각해봤자 나오는 답이 없기에 주뢰는 근처에서 진통과 지혈에 좋은 약초를 몇가지 찾아 다시 돌아왔다. 고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주뢰의 기척에 놀랐는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워서 어느새 찾았는지 손에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노려보는 것이 조금은 씁쓸했다.

 

"저입니다, 고공."

"당신이 정말로 산채에서 저를 처리하러 온 자가 아니라고요?"

"아닙니다."

"제가 산채를 운운해도 전혀 놀라시지 않는군요."

"아무래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허나, 확인차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당신이 적을 두고 있다는 산채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오산채라고 합니다. 까마귀 오를 쓰는 산채죠."

 

청림채 이전에 친우가 있던 곳이다. 기억을 잃어버린건가? 부상의 문제로? 부상이 심하기는 했지만 정신적인 부분이 충격 받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 무인이 칼에 베인다고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이 흔한 일도 아닐텐데 말이다. 주뢰가 침묵하자 고공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팔짱을 낀 체 고개를 돌려버린다. 불현듯 처음 같이 한 여행이 생각났다. 지금 보다는 덜 사나워도 그 때도 저렇게 거리를 두고 자신이 주는 건 받지도 않았고 거의 밤을 뜬눈으로 세웠던 친우를 말이다. 보름달이 저물어서 그믐달이 된 것처럼,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래도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사납더라도, 날카롭더라도, 고공은 고공일테지.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제 옆자리 한켠을 양보하고 마는 이라는 걸 잘 알기에 주뢰는 기다렸다. 일부로 시야에 닿는 곳에 있는 열매를 수집하거나 벽곡단을 꺼내서 자신이 먼저 먹어 독 같은 것이 없는 걸 확인 시킨 다음 고공에게 나누어 주었다.

 

"상처가 다 나으면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산채에 같이 가자고요?"

"오산채 말고 다른 산채 입니다."

"다른 산채로 나를 팔아버린 거 였군."

"그건 아닙니다."

"아니기는요. 저 같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놈 거슬리는 거 겠죠."

"자세한 이야기는 가는 길에 해드리겠습니다."

"두고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어디 정파 도련님 같은데 저 같은 놈이랑 엮기지 말고 떠나시죠."

"그것도 사양하죠. 아픈 이를 두고 그냥 갈 순 없고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걸요."

"저한테 뭘 숨기고 있는겁니까?"

"당신이 저랑 떠난다면 들려 드리겠습니다."

 

모용주뢰는 한 번 더 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그믐달이 되었더라도 당신은 얼마든지 보름달이 될 수 있을거라고 믿고 있으니 괜찮을거라고, 달은 다시 뜰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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