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고공&의진

저승사자 고공과 영안 아보

notion5846 2024. 11. 23. 23:28

겉에 입은 검은색 두루마기를 보아하니 자신의 집 베란다로 들어온 저 혼령은 저승사자구나. 뭐라더라 한국 지부 유니폼이라고 했던가. 고공이 언젠가 해준 설명을 떠올리면서 아보는 부모님의 말에 대답하면서 베란다에 들어와서 저를 향해서 가볍게 손을 흔든 낯선 저승사자가 베란다 바닥에 축 늘어진 고공을 내려놓는 것을 보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다친 건가? 하지만 데리고 온 저승사자가 웃겨 죽겠다는 얼굴로 웃고 있는 걸 보면 큰 일이 아닌 거 같아서 아보는 부모님과의 대화에 집중했고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하던 낯선 저승사자는 아보의 곁에 와서 웃음을 참는 소리를 내며 슬쩍 속삭였다.

 

"당신이 저 녀석이 말한 그 귀여운 친구 맞죠? 회식이 있어서 저 녀석한테 술 먹여서 지금 좀 취해 있어요. 이상한 주정은 안 부릴거고 아침에는 깰 겁니다."

 

그리고는 다시 웃음을 참는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사라진다. 베란데에 엎어져 있는 고공이 조금 웃기기는 한데 별 반응이 없는 걸 봐서 그냥 취하면 잠드는 편인가? 부모님과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보는 슬쩍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고공?"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킨 고공인 활짝 웃어보인다. 고공은 평소에도 웃는 상이었지만 이건 훨씬 더 풀려 있다는 느낌이 드는 웃음이다.

 

"아보? 언제 왔어요? 귀여운 아보."

 

취한 거 맞군. 아보는 부모님이 거실에 안 계신 걸 확인하고 고공을 일으켜 세웠다. 아마 이것이 만화라면 주변에 꽃무늬가 휘날리고 있지 않을까. 일어난 고공이 알아서 아보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평소라면 생사부를 들고 방 천장 모서리에 앉아서 자기 일을 할테지만 오늘은 자신을 끌어안은 상태로 헤실헤실 웃고 있는 것이 낯설다. 그렇지만 딱히 싫지는 않다.

 

호칭이 귀여운 아보인 건 웃기지만. 근데 아까 다른 저승사자도 그리 불렀는데 평소에 동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나? 아보는 자신에게 붙어 있는 고공을 떼어놓고 그를 불러보자 공중에 축 늘어진 상태로 떠 있는 고공이 그 질문에 길게 늘어지는 대답을 해온다.

 

"제가 귀여워요?"

"물론이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로요. 언제나 당신은 올곧았고, 귀여웠고, 태양 같았으니까요."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옛날부터, 오래전부터 그랬죠. 처음 만났을 때에는 성가셨는데, 그래도 당신은 결국 나를 잡았으니까요."

 

하하하, 하고 힘 빠진 웃음을 흘리며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면서 얌전히 대답하더니 다시 자신을 꼬옥 끌어 안아주며 머리를 쓰담더니 나지막한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아보는 고공의 행동에 피식 웃고 말았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거리 두면서 틱틱거리더니 그것과 정 반대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그건 좀 새롭다. 이런 게 취중진담인가 보다. 아보는 고공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려고 집중하면서 책상 앞에 앉았다.

 

적어도 중국어인가? 중국어 라고 하기에도 좀 억양이 특이한데 이거 살아 생전에 들은 노래인가? 배웠던 중국어를 다시 떠올리며 해석해본다. 대충 해석은 되는데 이거 혹시 자장가일까? 어쩌면 오래전 과거의 자신에게 불러줬을지도 모르는 노래인가.

"좋은 노래네요."

"으음, 월담 대협이, 가르쳐 줬던 자장가인데, 아보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잤다고 했어요."

"술에서 깨면 한국어로 가르쳐 줄래요?"

"그러죠. 아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줄게요."

 

그리 중얼거리던 말이 흐려지면서 공중에서 그대로 다시 늘어진다. 끌어안고 있던 팔에 힘이 확 풀린 것을 확인한 아보가 슬쩍 고공을 툭 건들자 풍선 마냥 그대로 밀려나간다. 잠들려고 하나? 자는 걸 보는 건 처음인데 저승사자도 술에 취하고 잠을 자는구나. 맙소사, 살다 살다 저승사자 술주정을 다 들어보네. 보통 사람이었으면 녹음이라도 해서 나중에 놀려먹을텐데 아쉬워라.

 

과연 술에서 깨면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을 기억할지 아보는 궁금해 하며 자신도 자기 위해서 불을 끄고 침대로 몸을 던졌다. 허공에 떠 있던 사자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다시 자장가가 들려왔다.

 

"이제 잘 자렴, 아가야. 꿈속에서 너와 함께 있을게."

"히히, 잘자요, 고공."

'1차 > 고공&의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공 판타지au  (0) 2025.01.07
유소와 고공  (0) 2025.01.07
주공  (0) 2024.11.22
저승사자 고공이랑 영안 아보  (0) 2024.11.19
작명  (0)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