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고공&의진

주공 판타지au

notion5846 2025. 1. 7. 20:44

지팡이로 흙바닥에 마법진을 그리면서 모용주뢰는 흘끗 앞을 보니 고공이 도끼를 오크의 머리에서 뽑는 것이 보였다. 뽑으면서 원심력으로 휙 돌더니 옆에서 달려드는 오크의 몸을 반토막 내고는 다시 자세를 잡는다. 다시 바닥을 보며 진을 새긴다. 아, 이 부분 피가 튀어서 조금 지워졌군. 다시 그 위에 식을 적고, 그리고, 계산한다. 어릴적에는 아버지가 마법을 스는 걸 보고 정말 만능이라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런 말 하는 사람을 보면 배워보라고 해보고 싶어지는군. 시덥지 않는 생각들이 떠오르다가 사라진다. 

 

주문을 외우며 마나를 불어넣고, 증폭 시킨다. 티없이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진다. 변하는 주변 공기가 변하는 걸 느꼈는지 고공이 오크의 가슴에 박아넣은 도끼를 두고 뒤로 물러나 주뢰의 뒤로 몸을 피한다. 하늘에서 섬광이 내려쳤다. 탄내가 사방을 채우고 새하얀 빛이 사방을 채운다. 옆에서 고공이 작게 박수 치는 소리가 들렸다.

 

"멋지네요. 이런 게 가능한지 몰랐는 걸요."

"보다싶이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려요."

 

포션을 꺼내서 마시고는 주뢰는 금이 간 지팡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리가 뭔가요? 보통 마나양으로는 이정도 규모는 힘들지 않나요?"

 

눈앞의 잿더미들을 보면서 고공은 제 도끼를 찾아서 들어보고는 작게 혀를 찼다.

 

"정확하게는 번개의 신을 모시는 신전의 성유물과 연결해서 힘을 빌려 쓰는 방식인데 공간 연결 마법이랑 이어서 제 마나로 증폭 마법을 걸어서 대기에 흩뿌리는 식인데 더 설명하려면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야 되네요."

"신전의 힘을 빌려도 되는겁니까?"

"보통 마탑에서는 안하죠. 저는 일단 궁에서 의뢰를 받고 조사를 하는 차원이니 한두번 정도는 괜찮죠. 물론 어디에 썼는지 보고서를 써야죠."

 

바닥이 난 마나를 느끼니 어지러워서 결국 주저 앉자 고공은 고공대로 잿더미에서 타지 않은, 아직 쓸만한 것이 있는지 뒤지기 시작한다. 신전에 올릴 보고서랑 여기 오크들 분포도를 만들어서 궁에 올리고 토벌대 수를 늘려야 한다고 어머니에게 건의 들여야겠군. 멍하니 보고서 내용을 정리하는 사이 고공은 꽤 날카로워 보이는 단검을 주워들었다.

 

"갈까요?"

"그러죠."

"돌아가면 이번 호위에 대한 의뢰 정산도 해야겠네요."

"바로 정산해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이제 콜트라 초원으로 가야하는데 거기 조사가 끝날 때까지 호위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을에 내려가서 그것에 대한 계약서 따로 쓰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린다. 구두 계약 따윈 절대 안 한다고 돈 받은만큼 그정도로 일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첫만남 때에 비하면 자신에게 마음을 연걸까.

 

"고공, 전에 가출했던 영애분을 수도까지 데려다준 거 기억하나요?"

"아, 그 아가씨요?"

"'이번에 데뷔당트를 한다고 초대장을 보냈어요. 고공의 몫도 있어요."

"안 갑니다. 귀한 집 아가씨가 저 같은 용병이라 어울려서 뭐가 좋겠습니까?"

"그런 걸 신경 쓸 성격 아닌 거 알잖아요."

 

입을 다물고 자신을 한 번 보더니 다시 걷는다. 아, 또 안 좋은 버릇이 나왔군. 거짓말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대답하기 싫으니 입을 다물고 외면해버린다. 저 상태가 되버리면 무슨 말을 해도 묵묵부답이다. 너무 깊이 파고 드나, 주뢰는 뒤를 따라가며 처음 만났을 때를 그 계기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아는 어느 귀족의 아들이 오래전에 없어졌는데 초상화를 보내줄테니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면 소식을 전해달라고 했다. 이 넓은 대륙에서 만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생각외로 금방 만났다. 집에서 도망친 도련님이 용병으로 살고 있을거라고는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주위 평판은 꽤 신선했다. 길드로 정식으로 계약 맺은 거 아니면 아무 의뢰도 안 받는 용병. 호위 의뢰라는 이름 하에 데리고 가서 만나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악을 대면할 수 있게 등을 밀어주었다.

 

"어째 당신은 갈수록 간섭이 많아지는 거 같네요."

 

고공의 말에 주뢰는 어깨를 살짝 으쓱하였다. 간섭이라. 확실히 자신은 그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 아마도 그건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거부하면서도 그리워하기 때문이겠지. 자신과 아버지처럼 만날 수 없게 된 것도 아니니 최악이 후회가 되기 전에 좀 더 등을 밀어주고 싶을뿐이었다.

 

"싫습니까?"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까?"

 

삐딱하게 고개를 갸웃하고는 묻는다. 이제는 그것이 부정의 뜻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주뢰는 말 없이 친우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래도 데뷔당트,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럴게요."

"보고서 다 쓰면 불러요. 마을 대장간에 가서 새 도끼를 찾아보고 있을테니까요."

"그러면 제 지팡이도 수리 좀 맡겨주시겠어요?"

"마탑에 가는 게 아니라요?"

"임시로 고치고 나중에 마탑에 가서 제대로 수리해야죠. 그리고 저녁은 어떻게 할까요? 식당에 갈까요?"

"당신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렇게 하세요."

 

고공이 그제야 미간의 주름을 풀고 평소처럼 웃는다. 그럼, 어서 돌아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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