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조금은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던 토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어떤 분이 저주 관련으로 자꾸 문의를 주셔서 개인적으로 의뢰 안 받는다든데 자꾸 연락이 오네요. 얼굴을 보고 직접 이야기해볼까 싶은데 혹시 오늘 오후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
곤란한 얼굴로 벨이 울리는 휴대폰을 들어 보이는 그의 말에 천룡은 제일 먼저 오후에 오기로 한 손님을 떠올렸다. 손님 대접하는 일은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는 전화기를 들어서 오늘 비번이라서 쉰다고 하던 고요를 불렀다.
"싫다고 하는데 자꾸 부르는 거 봐서는 그냥 보통 성격머리는 아닌 거 같네. 고요하고 같이 가."
"네? 아니, 고요상 오늘 쉬는 날인데 부를 수는 없죠!"
"이미 불렀어. 오늘은 그냥 손님 상담만 해드릴거니까 너도 적당히 놀고 와."
약간 머뭇거리던 토키가 이윽고 살짝 웃고는 잠시후 도착한 고요와 함께 사무실을 나갔다. 시계를 보니 12시이니 저 둘이서 알아서 적당히 점심 사먹겠네. 대충 컵라면으로 식사를 떼우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손님의 의뢰는 별 거 아닌 잡귀에 관한 일이었고 다음 약속 시간을 잡아 퇴치하기로 하고 간단하게 차를 마시고 잡담을 나눈다.
안심한 의뢰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손님이 돌아갔을 때에는 시간은 이미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맙소사, 그 손님 엄청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시는구나. 뻐근한 목을 만지던 천룡은 다시 시간을 확인하였다. 5시. 토키와 고요가 나간지 벌써 6시간째다.
둘이서 잘 놀고 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토키? 아직 밖이야?"
휴대폰 넘어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귀가 따가운 지직거리는 소리가 대답 대신 들려왔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윽고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통화를 유지한 상태로 연 문자 메세지는 역시나 토키에게서 온 문자였다.
내용은 사진 밖에 없다. 밖이 아니라 안쪽을 찍은 거 같은 대문에는 금줄이 걸려 있었다. 금줄, 밖에 있는 걸 안에 못 들어오는 용도로 쓰는 건데 이게 안에 걸려 있다는 건 안에 있는 걸 못 나가게 하는 용도가 될텐데? 거기에 대나무가 떡하니 걸려 있다. 그 다음 사진은 새하얀 모래가 펼쳐져 있는 정원이다. 바닥에 누워서 찍은 거 같은 시선의 사진. 이 이상한 시선. 혹시 그냥 사진이 아니라 염사라도 한건가?
여전히 연결된 통화 넘어로는 낮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이 웃음소리. 이 망할 여우가 무슨 짓을 하는건지. 혀를 찬 천룡은 서울시 지도와 서랍에 넣어 둔 토키의 머리카락을 꺼냈다. 점사는 오랜만인데, 그는 머리카락을 구슬에 감아 지도 위에 올려두었다. 통화로 연결 되어 있을 때 찾아야한다.
범위를 넓게 잡을 필요 없다. 토키가 간다고 한 약속 장소는 역 근처 카페다. 고요 녀석이 자차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었으니 멀리 가봤자 버스나, 택시가 닿을 수 있는, 주택가가 있는 지역. 먼 곳을 볼 필요 없다. 집중해라. 게다가 금줄과 대나무면 무당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반인 찾는 것보다 빨리 찾을 수 있다.
지도 위에서 구슬이 구르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통화에서 야, 하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구슬이 멈췄다.
그 여우놈은 방해를 하는건지, 돕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구슬이 멈춘 지역을 살펴보면서 한 번 더 점사를 시도해본다. 검은 짐승의 이미지와 함께 주소를 찾아냈다. 이게 무슨 일이람, 투덜거리며 그는 택시를 불렀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장소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파란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리자 가볍기 그지 없는 목소리가 대답해왔다.
"친구를 찾는데 여기로 왔다고 하던데 혹시 들어가봐도 될까요?"
"죄송하지만 여기에 아무도 안 왔습니다. 돌아가주십시요."
할말이 없다. 자신이 경찰도 아니고, 아니 경찰도 함부로 못 들어가기는 하지. 쯧, 하고 혀를 차고 변명거리를 생각하는 천룡의 앞으로, 담을 넘어서 검이 날라와 떨어졌다. 반으로 부러진 반쪽짜리 검의 겉면에는 진득한 피가 묻어 있었다.
"방금, 댁 집 안에서 칼이 날라왔는데 경찰 부르는 쪽이랑 문 열어주는 쪽이랑 어느쪽이 더 낫을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기에 천룡은 대문을 열었다. 잠겨 있지 않았는지 쉽게 열린 문 넘어로 새하얀 모래가 깔린 정원이 제일 먼저 보였다. 이거 꼭 유투브에서 보던 일본식 정원 같다는 감상을 하면서 안으로, 금줄을 넘어로 들어가는 순간 그 눈에 잡것들이 보였다.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것들. 일일히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보다는 피곤하지만 편하지.
달려드는 것들을 구슬을 날려 터트리면서 마당을 가로 질러 현관으로 가 문을 열자, 거기도 바닥에는 흙이 깔려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씩씩거리는 딱 봐도 무당처럼 보이는 사람 그리고 제사상 위에 서서 축 늘어져 있는 토키를 업고 있는 고요가 보였다.
"꼴이 그게 뭐냐?"
"뭐 보다 싶이 무당이랑 기싸움 중."
퉷하고 피를 뱉은 고요가 능청스레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천룡은 다시 부적을 꺼내들었다. 구슬도 아직은 넉넉하다. 주위의 저 잡귀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요가 반만 남은 칼을 움켜쥔다. 던전에 비하면 이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 뒤에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제사상에 놓여진 생선이나 우물거리는 여우 놈에 비하면야 별 거 아니었다. 그 수가 많아서 힘을 좀 써야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잡귀들을 다 처리하고나니 넋이 나간듯이 주저앉은 무당이 뭐라, 뭐라 악을 쓰는 것을 무시하면서 천룡은 협회를 불러야하는지 서 있자 제사상에서 내려온 고요가 어느새 잠든 토키를 넘겨주었다.
"어차피 협회 불러서 조사해야할텐데 조사 받는 거 귀찮을테니 데리고 일단 돌아가."
"너는?"
"나야 뭐 조사 받는 건 익숙하니까 먼저 가."
흐르는 코피를 대충 소매로 닦으며 고요가 대답했기에 천룡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소파에 토키를 눕히고 자신도 침낭을 펼쳐 누웠다. 졸립다. 힘을 너무 많이 썼나. 겨우 수면안대를 찾아서 쓰고 누워 그런 생각을 하며 잠드는 사이로 여우가 일본어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일어나면, 고요가 알아서 일 끝내겠지.
그리하여 천룡이 잠에서 깨어난 것은 꼬박 하루가 지난 다음날 아침이었다. 소파에서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토키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토키 위에서 춤 추는 여우에게 구슬을 던져주고 나니 고요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몸은 괜찮아?"
"뭐, 어느정도."
"토키는 계속 자고 있네."
-새벽에 한 번 깼다가 다시 잠들었단다.
여우의 대답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고요가 내민 캔커피를 받은 천룡은 이어지는 고요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무당 원래 악귀 같은 걸 모으는 놈인데 저 망할 여우를 노린거지. 어휴, 처음에는 카페에서 걍 자기한테 저주를 받은 거 같다고 도와달라고 하도 매달려서 "
"넌 그래서 집까지 쫄래쫄래 따라갔어?"
"아니, 토키가 그러면 한 번만 보겠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애가 비틀거리더니 집에 들어가더니 아예 쓰러져서 굿판 펼쳐진 거 보고 느낌이 싸해져서 애 없고 달려드는 악귀들 상대하고 있었지."
"저 여우는 아무것도 안 했고?"
"무당이랑 일본어로 뭐라고 떠드는데 알바냐."
"필요도 없는 여우놈."
둘의 째려봄에도 여우는 킬킬거리고만 있었다.
"그 무당이 여우를 뺏으려고 했나봐."
"저딴 걸?"
"근데 토키는 왜 쓰러진거야?"
"몰라. 지금은 잘 자고 있는 거 같은데 병원에 데려가야하나?"
-별 거 아니란다. 이 아이는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않겠다는 댓가를 치루고 도망친 아이인데 그 집 흙도, 나무도, 제사상의 음식들도 전부 일본에서 가져온 것들이더구나. 다시 고향의 흙을 밟았으니 계약의 댓가로 쓰러진거지 지금은 괜찮단다.
"그 무당은 그걸 어떻게 알고 준비했데?"
-이 아이 가문도, 나도 나름 유명하단다.
"진작에 성불 시켜야 했어."
-밖에서 못 들어오고 있길래 들어오라고 검도 던져서 들어올 핑계거리를 만들어줬는데 너무하네.
아직 기운이 다 안 돌아와서 아쉽다. 미간을 찌푸리는 천룡을 보면서 여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거리고는 금세 연기로 변해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나 조사 받으러 안 가도 되냐?"
"됐네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면 나중에라도 나 부르지마라."
"당연하지."
몸을 살짝 뒤척이는 토키를 보면서 둘은 그냥 말 없이 몸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