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웅웅 울린다. 황천룡은 겨우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분명 힘이 다 해서 뻗었는데 평소라면 토키가 자신을 옮기거나 했을텐데, 그런 생각을 사이로 소리가 들렸다. 끼, 끼익, 하고 억지로 뭔가 비트는 건 같은 소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토키의 긴 백발이 보이고, 이윽고 그 소리가 토키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인 걸 깨달았다. 손에 뭔가를-던전의 귀신은 거 같은-들고 벽에 내려치면서 웃고 있다. 그 웃음 소리 사이로 끽끽, 거리는 소리가 섞여서 울린다. 천룡은 선글라스를 위로 올렸다.
분홍색이 사라지고 검은색이 보인다. 저게 뭔지 모르겠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다. 뭔가가 토키에게 씌인 상태겠지. 아마, 토키가 말한 그에게 붙어 있는 악령일까. 긴 꼬리를 천천히 흔들면서 그것은 손에 들린 것은 저 멀리 던지더니 천룡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ㄲ-깼나?"
쇳긁는 소리가 들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밝은 옥빛 눈은 탁해지고 흰자마저 검게 변해 있다. 웃는 것인지, 뭔지 쇳긁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다가온다. 급히 품에서 꺼낸 부적에는 글이 없다. 만들어 놓은 게 다 떨어졌나.
"직장 상사라는 놈이, 부하 두고 먼저 뻗어버리면, 쓰나."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킬킬거린다. 어디 만신급이나 용왕 같은 존재에 비하면 격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맨몸으로 상대할 것은 아니다. 돌아가면 대체 무슨 악령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남의 직원 몸을 함부로 차지하면 쓰나."
"하하, 하, 너를 부수면, 이 아이가 슬퍼할, 까?"
길쭉한 손톱을 겨누면서 다가온다. 꼬리가 있는 걸 보면 동물령인가? 오, 일본에는 동물도 신으로 모시는 곳이 있었던 거 같은데 거기서 온 건 아니겠지? 천룡은 입술을 깨물었다. 뒤로 살짝 몸을 빼자 더 재미있다는 듯이 바싹 다가온다. 깨문 입술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지고 자신의 귣은 표정을 가리는 것처럼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는다. 입술에 묻은 피가 손에도 묻었을테지. 다시 손을 내리자 바로 코앞까지 와 있는 것과 눈이 마주친다. 반사적으로 돋는 소름을 참으며 종이를 꽉 잡는다.
"부적, 다 떨어졌자, 잖아. 아, 정말, 널 찢으면 이 아이가, 얼마나 괴로워할까."
"거, 말 한 번 많은 놈일세."
천룡은 피로 완성한 부적을 보았다. 이게 효과가 있으면 좋을텐데. 좀 더 다가온 그것을 향해 손을 뻗어 이마에 부적을 붙이자 표정이 일그러진다. 쇳소리가 나던 입에서 짐승의 캥캥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꼬리가 사라지고 풀썩 쓰러지는 몸을 황급히 받아냈다.
"와아, 진짜, 죽을뻔했네."
품에 안긴 토키의 입에서 고른 숨소리를 들리는 걸 확인하고 천룡은 그의 뺨을 쿡쿡 찔렀다. 하여간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직원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이미 고용하고 같이 사는데 책임을 져줘야하지 않겠나. 그래도 무슨 악령이 붙어 있는지 제대로 캐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며 그는 벽에 몸을 기댔다. 조금만 쉬었다가 돌아가야지. 품에 안겨 있던 토키가 몸을 뒤척인다. 깨어나려나? 살살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평소와 마찬가지로 밝은 옥색의 눈동자가 천룡은 본다.
선글라스를 찾아 쓴 천룡은 토키가 뭔가를 더 말하기도 전에 바닥에 다시 드러누웠다. 익숙하게 천룡을 안아 든 토키가 황급히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고 여러번 들리는 사과에 그는 평소처럼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