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남궁월야

더 롱 다크 au

notion5846 2025. 1. 9. 14:15

그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해외 출장을 나갔고 업무를 보고, 귀국하려던 날이었다. 날씨는 흐리고 부는 바람이 차가웠다. 호텔에서 나오면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초여름인데 눈이 오는 그 사실에 월야가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쯤에는 눈과 바람으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떴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월야가 사고 나겠어, 하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은 떨어지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과 밤하늘, 오로라가 보였다. 당황스러움과 이게 꿈이 아니라고 외치는 거 같은 귓가의 바람소리와 함께 눈밭으로 떨어졌다. 구르고, 구른 다음 몸을 일으키자 보이는 풍경은 설원과 나무, 그리고 불타고 있는 비행기의 잔해로 보이는 뭔가였다.

 

"월야!"

 

비행기 잔해들이 타면서 느껴지는 불길의 뜨거움과 설원의 차가운 바람을 느끼면서 뒤늦게 형제의 이름을 불렀다. 형들에 이어서 너까지 가버리면, 그건 상상조차 하기 싫어서 설원을 뛰어다녔다. 다행스럽게도 그도 눈밭에 처박혀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불안감을 감추려는 듯이 평소처럼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둘다 별 다른 부상은 없었다. 비행기의 잔해는 비행기의 크기에 비해서 작았다. 우리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시체도 없었다.

 

"뭐 기억나는 거 없어?"

"너 잠들고 나도 영상 보다가 잠들었지."

"결국 너도 아는 게 없다는거군."

"네가 모르는데 내가 알면 이상하잖아."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뒤진 잔해에서 찌그러진 통조림 몇개를 주웠고, 상비약이 든 약통을 찾았다. 꼭, 게임 속 같네 하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잔해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추위가 찾아오고 있었다. 오로라 탓인지 월야의 머리카락이 더 빛나는 거 같은 바보 같은 착각을 하면서 걸었다.

 

토끼와 사슴이 간간히 보이고 눈에 파묻혀 아무도 없게 된 부숴진 오두막집 같은 것들이 중간중간 보였다. 어느 오드막에서 찾아 책이나 신문쪼가리들에는 적힌 글은 우리가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글자들로 적혀 있었다.

 

"버뮤다 삼각지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말을 믿어야겠어."

"헛소리."

"이 글자는 영어도 아니고 인도어도 아니고 심지어 한자문화권도 아니잖아!"

"네가 모든 글자를 아는 건 아니잖아?"

"힌디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이건 무슨 그 뭐냐, 그 보니치니 문서 같잖아."

"내가 너 오컬트 채널 볼 때 말려야 했었는데 그냥 둔 게 실수군."

 

평소처럼 투닥거린 것은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오두막집 낡은 난로에 남은 석탄과 성냥불로 몸을 녹이면서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나마저 돌아가지 못한다면 회사는, 아버지는 과연 괜찮을까. 그런 불안감이 추위와 함께 몸에 스며들었다.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오두막에 찾은 지도를 들고 다시 걸었다. 어디선가 찾아 낸 덫이나 활과 화살을 들고 토끼를 잡아야했다. 물론 잡고도 손질을 못하거나 해도 재대로 못해서 털 반, 고기 반 덩어리었지만.

 

"그래도 어째 우리 용케도 살아있다?"

 

늑대 울음소리를 피해서, 곰의 발자국을 피해서 가끔 드는 오로라를 보면서 여긴 확실히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니구나, 그걸 깨달아가면서 우리는 계속 살아갔다.

 

"이제 고깃덩어리에 털이 안 섞여 있네."

"실없는 소리를 하기는."

"밖에 말려 둔 사슴 가죽 이제 거둬야하지 않아?"

"너 장갑 다 헤졌더라. 그걸로 장갑 먼저 만들어."

 

부숴진 오두막을 고치고, 지도를 채워가고, 불을 피우고 언제나 내리는 눈과 오로라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가는 걸 본다. 벽에 걸린 지도를 하나, 하나 채워간다. 버려진 낚시터, 오두막, 눈에 파묻힌 철도, 탈선한 기차, 그리고 가끔 보이는 얼어붙은 시체들.

 

"시체가 입던 옷을 벗겨서 입는 거 이제 아무렇지 않아진 거 같아."

"어쩔 수 없지."

 

그리 말하면서 눈속에서 찾은 석탄을 난로 안에 던진다. 하늘이 흐린 거 보니 오늘도 눈보라가 칠 모양이다. 눈보라가 그치면, 좀 더 멀리 나가보기로 하였다. 어딘가에는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이 있고, 우리가 돌아갈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치만 그런 생각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대신 능청스레 사슴 고기를 요리한다.

 

이 새하얀 설원에서 적어도 함께인 것이 다행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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