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남궁월야

a glimmer

notion5846 2025. 1. 15. 16:10

그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기 그지 없다. 의원의 말로는 힘든 기억의 경우 본인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아마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월야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마차였다. 흔들리는 마차 안의 자신. 괜찮을거라고 말해주는 피투성이 붕대를 칭칭 감은 사람. 마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신 날이었다.

 

그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 때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도망쳤다.  처음 보는 낯선 집의 복도를 달려, 햇빛을 등지고 달리고, 도망쳤다.

 

"너 누구야?"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는 굉장히 거만하게 말했다. 어깨를 으쓱한 상태로 남궁의 집에서 누군데 그리 뛰어다니냐고 나름의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표정 웃기지만 그 때 자신은 그 표정에 나름 겁을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자신을 찾으러 온 이가 자신과 그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휘야, 단휘야."

"다녀오셨어요?"

 

잔뜩 거만하게 굴던 표정을 풀고 자신을 지나서 다가온 사내에게 달려갔다.

 

"벌써 만났구나. 휘야, 이쪽은 아버지가 이번에 구한 아이란다."

"구해요?"

"돌아갈래..."

"보다싶이 너랑 나이도 비슷한 거 같으니 갈 곳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남궁에서 돌볼거란다."

 

그러보니 그 뒤 그 이야기를 듣다가 또 도망쳤다가 잡혔다. 그 뒤에 어땠더라. 다른 곳에 입양 시킬거라는 가주님의 생각과 다르게 자신은 단휘랑 친해졌고 투닥거리며 지내다보니 계속 여기 있게 되었다.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이름도 받았다. 권법을 마저 배우고 싶다는 말에 권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술 마시다가 왜 실실 웃고 그래? 벌써 취했어?"

"그럴리가~."

 

술 대신 차를 마시는 단휘의 옆모습을 보고 있을려니 처음 봤을 때 그 오만한 표정을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과거를 떠올리던 머리는 술기운과 섞여서 천천히 그동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보니 15살 쯤이었던가 우리가 정말 미친듯이 싸우고 서로 그림자도 안 볼려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휘의 위로 있던 두 형이 마교에 의해 독살 당한 날부터 우리 사이가 꽤 미묘해졌다.

 

마교의 첩자가 아니냐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손가락질에 쫓긴 탓인가 자신도 단휘에게 남궁의 잘난 도련님! 하면서 싸움을 걸었으니 오십보백보였을테지. 쫓겨나지 않고 다시 사이가 좋아진 것이 어떻게 보면 기적이지 않을까.

 

"야, 단휘."

"왜?"

"안 힘드냐?"

 

찻잔을 비운 그가 빈 찻잔을 스윽 내민다. 술병을 집어 들어 그의 찻잔에 술을 따른다. 천천히 술을 마시며 단휘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한다.

 

"힘들면 말해."

"그래."

 

가볍게 술잔을 부딪친다. 짠, 하는 소리가 울린다. 그날 마차 안에서 본 태양과 그 오만한 표정에서부터 시작한 자신의 인생은 이 안에서 끝날테고 단휘의 등 뒤에서 머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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