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집을 발견한 주뢰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여행하는 입장에서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벽과 지붕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주인이 있거나, 선객이 있을 가능성도 있기에 조심스레 안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작은 솥을 꺼낸 주뢰를 문짝이 사라진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를 살펴 보고, 근처 나뭇가지와 낙엽을 긁어 모아 불을 지폈다.
"물이라도 길러 올까요?"
"뒷마당에 우물이 있던데 아직 물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건 어때요?"
짐을 내려놓은 고공은 주뢰를 잠시 말 없이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총총 사라졌다. 마침 오는 길에 잡은 토끼도 있고 건조쌀도 있으니 나름 든든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조리 준비를 끝낸 주뢰는 고공이 돌아오지 않은 것에 의문을 느끼며 뒷마당으로 나가 보았다.
"고공?"
낡은 우물 앞에 서 있는 고공이 보였다. 몸을 반쯤 우물 안쪽으로 숙이고 가만히 안을 바라보는 뒷모습에 고공은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렀다. 반응이 없다. 주뢰는 최대한 기척을 내며 고공에게 다가가 다시 그를 불렀다. 어깨가 움찔거린다 싶더니 주뢰의 얼굴로 정확하게 고공의 주먹이 날라와 그는 주먹을 막아냈다. 그제야 고공의 얼굴이 보였다. 하얗게 질린 그 얼굴. 자신의 어머니와 마주 했을 때와 같은 그 표정이 거기에 있었다. 제 뒤에 있는 것이 주뢰인 것을 확인한 고공이 손을 내리고 등을 돌려 두레박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고공은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청림채에 오기 전 다른 산채에 있었다고, 거기서 그나마 자신에게 잘해주던 산적이 있었는데 결국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 안심을 했을 때 등이 떠밀려 우물에 빠졌는데 줄이 몸이 감겨 긴 시간 매달려 있었다고, 줄이 아직 덜 아문 상처를 조이고, 그 때 다시 땅에 묻히는 거 같았다고, 그제야 배신은 언제든지 당할 수 있다고, 서유혼이 죽었다고 하기로 했다고 그리 생각했다고 이야기를 끝냈다.
"우물 물이 깨끗하네요."
이야기 끝에 주뢰가 한 말은 그게 전부였고 고공은 다시 평소 같은 웃는 얼굴이 되었다. 고공은 지는 석양을 등지고 있는 주뢰를 보았다. 의외로 지는 해는 눈부셔서 뢰의 표정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표정일지 상상이 간다. 주뢰의 긴 그림자가 자신을 가리는 범위에서 나와 고공은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그래도, 뢰 저는 여전히 그늘이 편합니다."
"그런가요? 그래도 이제 제법 그늘에서 나오는 거 같네요."
"글쎄요?"
오늘 저녁도 필시 고요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1차 > 고공&의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보와 월담이 쌔비지 (0) | 2025.01.11 |
---|---|
좀비 아포au (0) | 2025.01.11 |
아보와 고공-현대 au (0) | 2025.01.10 |
아보와 고공-나이 체인지 (0) | 2025.01.10 |
호오&주뢰&고공 (0) | 2025.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