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고공&의진

좀비 아포au

notion5846 2025. 1. 11. 00:09

사람은 감정 이입을 잘하는 동물이라고 한 것이 생각났다. 누가 했던 말이더라? 주사기에 가득 찬 약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벽 넘어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고통스러워 하는 것만 같았다. 실상은 아무 의미 없는 괴물의 소리이겠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이번에 만든 치료제는 효과가 있을까? 약효가 조금이라도 있기를, 저 고통이 끝나기를. 한참을 기다리지만 신음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방문에 달린 유리창으로 본 안 쪽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전보다 식욕이 줄어 든 거 같았는데 이것도 아닌가. 다른 배합을 생각해야겠고, 또 의진이의 피를 뽑아야겠지. 생각만 했는데 밀려오는 피곤함에 결국 긴 한숨을 내쉰다. 

 

결국 다음 실험으로 넘어가기 전에 실험실을 나왔다. 텅 빈 도로를 가로 질러 걸으며 중간에 보이는 마트에서 그나마 남은 식량을 긁어 모았다. 이제 여기도 완전 텅텅 비어버렸군, 앞으로는 좀 멀리 나갔다 와야 할 거 같다고 주변 지도를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높은 건물들을 지나 골목, 골목을 지나 도착한 대문 앞에 서서 버릇처럼 초인종을 눌린다. 물론 소리가 나지도 않았고, 대문은 이미 사라져서 폐허가 된 마당과 집을 훤히 보이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썩은 내가 이곳이 엉망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고웅은 뜯겨나간 현관 앞에 앉아 있는 진서윤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면 저번처럼 달려 들겠지. 여긴 원래 살던 집이었을까, 아는 이의 집일까, 아님 그냥 아무 상관 없는데 영역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래도 저번보다는 나아졌나?'

 

저번에는 얼굴을 보이자마자 달려 들었는데 자신을 기억하나? 이건 학습하고 있다는 증거인가? 그렇다면 학습을 한 저것은 자신이 아는 진서윤인가 아니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증거인가. 진서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자리를 떠났다. 무너진 잔해들과 구멍들을 뛰어 넘어서 이번에는 어느 가게로 향한다. 간판은 떨어져 사라지고, 뭘 팔았는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가게. 품에서 면사를 꺼내서 제 얼굴을 가리고 가게의 문을 노크 한다. 똑똑 두 번 두들기고 1분 정도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세 번, 쉬었다가 다섯번. 기다리자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괜찮습니까, 아보?"

 

작은 아이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조금 마른 거 같지만 괜찮아 보인다. 슬쩍 안쪽을 보았다. 가만히 이쪽을 보는 선배, 월담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아까 모아 온 식량을 주었다. 혹시 모르니까 노크하는 법을 바꾸고, 몸조심할 것을 당부하였다. 혼자 두기에는 너무 작은 아이. 데리고 가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힘들다. 지금도 저 안 쪽에서  이쪽을 보는 월담이었던 저것은 아보와 눈만 마주쳐도 곧바로 달려 들것이다. 저렇게 변해버렸어도 자신이 보호할 대상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식욕을 참고 있다. 월담은 처음부터 저랬다. 만약에 월담의 피도 채취해서 실험에-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젠 전부 다 실험체로 보는 건가?

 

의진이 옆에 있었더라면 등짝을 한 대 때리거나 진서윤이라면 어이 없다는 눈으로 보고 월담은 웃으면서 어깨에 힘을 빼라고 말해주겠지. 그런데 이제 그렇게 말해주는 이들이 한 명도 없다. 한 명, 도-. 그 누구도.

 

"선생님."

 

작은 손이 자신의 손을 꼭 잡는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대답한다. 이어지던 생각과 우울이 잠시 잠잠해진다. 정 안되겠으면 자신이 의진을 데리고 여기와 가까운 곳으로 올 수도 있겠지. 좋게 생각하자.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은 어딘가에 또 있겠지.

 

"이번 치료제는 아무 소용 없었어요?"

"네, 하지만 고기에 대한 욕구가 줄어든 것도 있으니 조금 더 해볼 생각입니다."

"나는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작은 아이의 머리를 쓰담아 주고 고웅은 다시 걸음을 자신의 거주지로 돌렸다. 다시 시작하자. 의진의 쾌할한 목소리를 다시 듣고, 진서윤의 어이 없어 하는 웃음 소리를, 선배의 다정한 미소를 다시 봐야지 않겠나. 돌아가는 길에 먹을 걸 다시 구하고,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 완전히 변하기 전 의진은 평소처럼 말했다. 날 포기할 거냐는 그 질문. 아마 자신이 의진에게 무슨 대답을 했던 간에 의진은 납득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모두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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