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페트라

페트산

notion5846 2025. 1. 17. 19:42

"산이 나한테 잘 맞지."

 

자리에 누워있던 페트라가 제 얼굴로 날라온 물수건을 이마에 올리며 대답했다.

 

"그치만 넌 싫다, 이 새끼야."

 

산은 자신에게 툴툴거리는 페트라의 말을 넘기며 하인이 들고 온 약사발을 그의 머리맡에 두었다. 산이 손에 묻은 흙의 흔적을 지우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나 페트라는 천천히 약을 마시기 시작한다. 마지막 한모금까지 마신 그의 손에 엿가락을 쥐여준 산이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로 쓰러졌습니까?"

"얘들이 용 모습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줬다가 변신 다시 하니 힘들더라. 참고로 피는 안 토했다."

 

지난달에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나. 아마 꼬마 하나가 숨박꼭질하다가 없어져서 찾는다고 페트라가 추적 마법이라는 걸 쓴 기억이 산의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별 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람이라면 죽을 양의 피를 토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빈 약 그릇을 보며 산은 혀를 찼다. 먼 대륙에서 온 용도 자비심 넘치는 동물인건지. 번번히 태릉의 일에 끼어드는 걸 보니 속이 조금 쓰리다. 자신이 이용하려고 데려왔는데 이렇게 낭비만 줄줄 하다가 결국 못 일어나면? 산은 아주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풀었다.

 

이 멍청한 용은 아마 신장을 빼달라고 해도 빼줄것이다. 곁에 보아 온 이 용은 정에 약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에 약하다. 이용하기 편한 그런 존재. 그러나 아껴 써야하는 존재. 마치 소원 3개 이루어 주면 끝인 램프 요정처럼. 그러니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할 존재다. 애들 구경거리 따위가 아니지.

 

"페트라."

"뭐?"

"손 줘보십시요."

"저번처럼 개취급하면 패버린다?"

"그땐 좀 아팠습니다."

 

의심 없이 손을 내민다. 잡은 손은 꽤나 부드럽다.

 

"페트라, 나에게 바라는 것 있습니까?"

"업보 받기?"

 

그의 손목에 주술이 담긴 끈을 묶는다. 그는 여전히 손을 내민 상태다. 아, 이 자비로운 용을 보아라. 얼마나 어리석고 순진한가.

 

"그런거라도 진심으로 원하다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바래보십시요."

 

진지한 얼굴로 뭔가 생각한다. 그 사이 그의 손몬에 묶은 끈의 반대편을 자신의 손목에 감는다.

 

"근데 이게 뭔데?"

"제약의 의식이지요."

 

그의 생각이 끝났는지 줄은 녹아내려 글자들이 되고, 놀라서 손을 빼는 그의 피부로 스며들어간다. 자신의 팔에도 스며든다. 따금거리고 화끈거리는 감촉이 온 몸에 퍼지고 그 감각은 가슴에 머물다가 사라졌다.

 

"무슨 짓 했냐?"

"멱살은 좀 더 세게 잡는 게 어떻소? 이리 느슨하게 잡……."

"대답이나 해."

"제약의 의식이요. 서로가 서로에게 제약과 약속을 거는거지. 난 그대에게 내 허락 없이 마법이 쓰지 말라는 제약을 걸었소."

"어기면?"

"우리가 나눈 제약은 방금 몸 속으로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소. 어기면 글자는 무수한 가시가 되어 어긴 이의 심장을 터트린다오."

 

멱살을 잡은 손이 풀린다. 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마법 쓰는게 그리 아니꼬았냐?"

"…마음대로 생각하시구려. 그대는 무슨 제약을 나에게 걸었소?"

 

페트라의 입이 열렸다.

 

"안 가르쳐 줄래."

"내가 갑자기 죽는 건 좀 곤란하지 않소?"

"괜찮아. 어차피 넌 절대 안 할 행동이니."

 

하, 산은 웃음을 흘리며 품에서 붉은 귀걸이를 꺼냈다. 페트라는 말 없이 머리카락을 넘겼고 그는 용에게 붉은 귀걸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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