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는 심장에 모여서 혈관을 타고 흐르며 마법을 발휘한다. 그리고 드래곤의 심장은 다른 어떤 생물보다 많은 마나를 품고, 더 빨리, 더 강하게 몸으로 보내며 마법을 발동 시킨다. 드래곤이 마법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물인 이유이었다. 그리고 페트라의 심장은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고장나 있었다. 다른 드래곤들에게 비해서 적은 양의 마나를 품고, 제대로 마나를 흐르게도 하지 못하여 그가 마법을 쓸 때마다 오히려 피를 토하게 만들고, 폴리모드를 해도 드래곤의 모습이 일부 남아있게 만들었다.
당연히 그의 모습을 본 다른 드래곤들은 그에게 손가락질 했다. 우습게 보고, 동정했다. 부모는 그를 독립 시키지 않았다. 성룡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레어 하나 없는 비참한 용생. 부모의 과보호는 애정을 동반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자식이니 가엽게 여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등한 개체로 보는 애정이 아니었다.
마법을 잘 못 쓸 뿐 자신의 신체는 건강하다. 아무 이상 없는데,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저들이 할 수 있는 일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하게 한다.
과보호도, 동정도, 비웃음도 모두 지겨워졌다. 답답한 감옥이나 다름 없는 부모의 레어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건 자살행위였다. 이곳을 떠난다는 유서 같은 편지만 남기고 발동했던 텔레포트. 좌표도 아무 곳이나 입력했다. 최대한 멀리,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곳, 뒤늦은 독립. 어쩌면 지옥을 갈지도 모르는 가출.
"여기 있었소?"
수풀을 헤치고 다가온 산의 얼굴에 하, 웃음이 나왔다. 눈앞의 풍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한 독립은 자신을 이 산에 떨구었다. 태릉이라는 일족이 사는 낯선 곳. 자신을 발견한 산.
"여기 풍경 좋네. 너만 없으면 더 좋겠고."
"당신 옆에 내가 없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거요?"
"푸하하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을 구한 이유가 이용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구했다는 걸. 그걸 눈치 채지 못할만큼 자신은 순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이용 당하는 것이라도 자신을 보는 그 시선은 동등한 것을 보는 시선이었다. 페트라의 용생에서 그것은 처음 겪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내 심장은 진짜 멍청한 심장이야."
"그대의 심장은 고장난 심장이라고 저번에 말했던 거 같소만?"
"그래, 그 고장난 심장도 제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
제 귀에 걸린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페트라는 옆에 앉은 산을 돌아보았다. 자신을 보는 시선을 보며 고장난 심장이 뛰는 걸 느낀다. 그는 손을 뻗어서 산의 멱살을 붙잡아 당겼다. 능청스레 여전히 자신을 보며 웃는 얼굴. 망할, 내가 내 손으로 지옥을 걸어 들어가는구나.
"할 말 있소?"
"할 말은 없고 하고 싶은 건 있지."
"오늘은 개 취급 안 했는데 때릴 생각이오?"
"이것도 때리는 걸로 칠거면 때리는 걸로 쳐."
능글 맞게 웃는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약간 당황한 듯 표정이 굳는 것이 보기 좋다. 입술을 떼자 금세 평소 같은 표정을 만들더니 들고 있던 부채를 가볍게 페트라의 머리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참, 별 이상한 짓을 다하는구려."
"심장 고장난 놈이 정상적인 일을 할 리가 없잖아?"
"이런 몸이라도 원한다면 드리겠소."
"지금 그 말 잊지마라."
이 산은 참 보기 좋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