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페트라

허산X페트라

notion5846 2024. 11. 18. 21:47

아, 젠장. 페트라는 얼굴을 구기며 자신의 날개와 꼬리를 보았다. 어째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더니 폴리모드가 어정쩡하게 풀렸군. 폴리모드 다시 걸면 또 속 뒤집어지는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보았다. 뿔과 검은 비늘의 꼬리와 날개가 꼴사납게 느껴진다. 쓸데없는 자괴감이라는 거 알지만 이렇게 보고 있으니 다른 드래곤들에 비하면 팔푼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짜증이 난다. 그 짜증으로 거울을 부수기 전에 그는 밖으로 나왔다. 산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그는 처음 허산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사실 첫인상은 잊었다. 그냥 그때에는 어디든 가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허산 녀석이 사실은 저승사자라고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저승사자 허 산이라. 안 어울리는군. 널찍한 평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켜 쉬고 몸에 붙은 마법 보조 액세서리를 전부 벗고 폴리모드를 해제한다.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니라 해제한 것이라 허락이 없어도 되는 게 다행이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심장이 미친 듯이 뛰다가 잠시 멈추는 거 같더니 이윽고 다시 뛴다. 서서히 지상이 멀어지고 실로 오랜만에 용의 모습으로 기지개를 켠다.

"그 모습 오랜만이네요."

바람에 실려서 들린 목소리에 기지개를 펼치던 몸이 그대로 멈췄다. 어쩜, 이렇게 작은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지. 아래를 보니 익숙한 그가 손을 흔들면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너는 언제 여기 온 거야?"
"당신에게 줄 약초를 캐러 왔는데. 근데 제게 말도 안 하고 올라온 건가요? 다시 폴리모드 하려면 제 허락 있어야 할 텐데 그건 생각 못 한 건 아니죠?"
"어차피 네가 알아서 찾으러 왔을 거니까."
"갑자기 왜 해제 했습니까?"

몸을 최대한 숙여서 허 산과 눈이 마주친 페트라는 대답하는 대신 손을 내밀어서 허 산을 자신의 손 위에 올리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폴리모드가 어정쩡하게 풀린 꼴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거라고 제 입으로 말할까 보냐.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마법 사용 허락 안 해줄 거지만요."

치사한 놈. 나더러 이 산에 이렇게 있으라는 거야? 결국 다시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제 손 위의 그가 새삼 완벽해 보이는 건 소위 말하는 콩깍지일까. 아무튼 그렇게 완벽한 모습인 그에게 그런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거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꼴이 영 아니었거든."
"그래요? 몸이 안 좋은 건가요?"
"그건 아냐."
"약초를 더 캐지 않아도 되겠군요."

그가 손에서 내려와서 허락을 말한다. 지금 바로? 되묻는 자신에게 싱긋 웃는 그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처럼 욕을 툭툭 내던지고는 폴리모드를 시전한다. 심장이 한 번 더 멈춘 거 같은 통증과 함께 몸의 힘이 쫙 빠진 상태로 바닥에 누워 있자 다가 온 그가 바구니 안에서 진통 효과가 있는 열매 몇 개를 손안에 쥐고 즙을 뚝뚝 떨군다. 입을 벌려서 받아 마시면서 흠, 이거 좀 웃긴 장면인데? 싶어졌다.

"통증이 가라앉으면 내려가죠."
"그 정도로 아프지는 않아."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까 바닥에 내려둔 액세서리들을 하나, 하나 주워서 착용한다. 반지, 귀걸이, 아, 이건 깨졌네, 새로 장만해야겠다.

"꼴이 안 좋았다는 거 혹시 폴리모드가 반쯤 풀린 그 모습 말하는 건가요?"
"뭐?"
"아까 약초 캐러 산에 오르기 전에 당신 방에 들렀거든요."
"그 꼴사나운 모습을 봤다고?!"
"그걸 꼴사납다고 생각해요?"
"당연하잖아!"

혹시 지금도 엉망인가 싶어서 황급히 뒤를 보는데 다행스럽게도 없다. 머리 위에 뿔은 그대로 있네. 젠장, 이놈의 뿔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구만.

"전 딱히 꼴사납다고 생각 안 하는데요?"
"누가 그런 말에 좋아서 부끄러워할 줄 알아?"
"사람의 형태에서 조금 어긋나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버럭버럭 지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말재주는 좋아."
"그래서 싫습니까?"

가운뎃손가락을 들자 평소처럼 웃는다. 싫지 않지만, 그걸 말로 하기에는 부끄러운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내 모습이 꼴사납다고 생각하고 네가 완벽해 보인다. 물론 성격이라든지 야심은 좀 아니지만.

"그럼, 슬슬 내려갑시다, 페트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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