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제갈 려

려진-화이트데이

notion5846 2025. 1. 10. 23:56

유진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려를 보기 어려워졌다. 뭘 하는 건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의약당에 출근하더니 퇴근하면 그대로 휙 사라져서는 늦게 돌아와서는 바로 잔다. 아니, 대체 뭘 하냐고 물어도 묵묵부답, 시비들이나 다른 가솔들에게 물어도 려 도련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웃으면서 장난스레 말하니 큰 사고를 치려는 건 아닌 거 같고, 그냥 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다. 세상 누가 자기 정인이 자신을 피하는데 기분이 좋겠나.

 

"으으으."

 

침대에 엎어져서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거고 말이다. 유진은 침을 들어 려를 불렀다.

 

"팔이 쑤셔요."

"이상한 사고 치는 건 아닐테지?"

"저의 손이 저주 받았다는 걸 깨닫는 중입니다."

 

뭘 하는건지. 유진은 려의 팔에 가볍게 침을 놔주었다. 낮게 앓는 소리에 걱정이 되지만 려의 고집도 보통이 아닌 것을 유진은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혈을 지긋히 눌려서 려의 입에서 신음이 좀 더 나오게 만들었다. 이상하고, 쓸데없고, 위험한 일이기만 해봐라. 유진의 말에 려가 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뭘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고집도 쎄기도 하지.

 

"원, 누굴 닮은건지 고집도 쎄구나."

"어르신도 고집이 쎄지 않습니까? 원래 부부끼리 닮은 법입니다."

 

려의 손에 감은 면포가 보이지만 능청스럽게 넘기는 려의 대답에 유진은 결국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끙끙 앓는 소리도 줄어 들었다. 의약당 퇴근하자마자 달려가는 반향을 보니 부엌 쪽인 거 같은데 부엌에서 할 일이라고는 요리 밖에 없을텐데 왜? 라는 의문이 든다.

 

요리라면 당가의 숙수들이 다 해줄텐데 직접 요리를 해보고 싶어졌나? 그렇다면 굳이 자신에게 비밀로 하고 저렇게 꽁꽁 숨길 필요가 있나? 뭘 숨기는 건지. 유진은 당장이라도 부엌을 뒤엎고 싶었지만 자신이 따라온다 싶으면 귀신 같이 눈치채고 따라 오지 말라고 하니 괜히 신경 쓰인다.

 

"으으, 또 끊어, 졌어."

 

잘 때에는 악몽이라도 꾸는지 중얼거리는 모습도 보이고 하니 유진은 슬슬 억지로도 말하게 해야하는지 고민할 쯤이었다.

 

"어르신, 좋은 저녁입니다."

"오냐, 의약당 퇴근하자마자 사라지더니 볼일은 다 끝난게냐?"

"어르신 삐지신겁니까?"

"삐지기는 누가 삐졌다는거냐?"

 

유진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던 걸 보던 려는 사랑스런 자신의 정인을 한 번 끌어 안아주고는 밖으로 나갔다가 뚜껑이 덮힌 접시 몇 개를 들고 돌아왔다.

 

"제가 살던 곳에는 말입니다. 상인들의 상술이기는 하지만, 연인들끼리 특정 날에 단 음식을 주고 받는 날이 있습니다."

"평소에도 할 수 있는 일 아니냐?"

"그러니까 상인들의 상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네녀석 요리를 만들고 있었던거냐?"

"네, 저쪽에 있을 때에는 챙길 일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립이 될 때까지 제가 듣고 본 것이 있다보니 문득 그 날짜가 다가오니 챙기고 싶더군요."

 

유진은 면포가 감긴 려의 손을 보았다. 나참, 그게 뭐라고 비밀로 하고 꽁꽁 숨기면서 며칠 동안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드는 건지.

 

"어르신 입맛에 맞으련지 모르겠네요."

 

접시의 뚜껑을 열자 마라바오위, 탕위안, 빙펀이 담겨 있었다. 당가의 다른 숙수들이 만든 것에 비하면 접시에 담은 것도 어설프기 그지 없지만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르신이랑 같이 먹으려고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오냐, 다시는 이렇게 비밀 같은 거 만들지마라."

"원 서운하셨습니까?"

"그래 보이면 어디 한 번 서운한 거 풀어보거라."

"이런, 식사가 끝나면 오랜만에 느긋하게 어르신이랑 시간을 보내야겠군요."

 

여전히 능청스러운 정인의 대답에 그는 웃으며 면포가 감긴 그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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