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94

주공 정마대전 이후 au

"수아야, 가서 묘직(墓直)에게 이것 좀 가져다주렴. 옷가지 조금이랑 쌀이다. 가서 안부 좀 전해주고.""네!" 보따리를 받으며 수아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나서서 번잡한 사거리를 가로 질러, 마을 외곽 묘지로 걸음을 옮긴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묘지 한가운데 있는 오두막의 문을 두들기자 안에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부시시한 검은 머리카락을 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늘 그랬듯이 콧잔등부터 그 밑으로 얼굴을 가린 복면을 쓴 밖에 보면 수상하다는 느낌을 잔뜩 주는 그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 거리며 수아를 바라보았다. "이거 부모님이 전해달래요. 옷이랑 쌀 조금 넣었다고 안부도 전해 달래요." 보따리를 받아든 그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러보니 묘직이 말을..

1차/고공&의진 2025.01.15

주뢰&고공&호오

아침부터 고공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꿈에 사형이 나왔고, 밤 사이 내내 가위에 눌렸고, 일어나서 계속 흉터가 쑤셔왔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이 그날인 걸 깨달았다. 서유혼이 사형의 칼에 베여서, 땅에 묻힌 날. 죽은 이의 기일 아닌가. 그걸 자각하자 입 안에서 흙맛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표정 모처럼 보는 좋은 표정이네." 그 와중에 다가온 호오의 말은 고공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속이 메슥거리는 와중에 다가오는 호오에게 저리 가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렇지만 호오는 다가왔다. 도망치고 싶은데 발이 땅 속으로 푹푹 빠지는 거 같은 착각이 들어 움직일수가 없다. 뻗어 온 손이 턱을 잡았다. 자신을 관찰하듯이 천천히 보는 그 시선과 욱씬거리는 흉터에 닿는 손가락에 고공은 곧바로 악몽을 떠올리며 얼굴을..

1차/고공&의진 2025.01.15

주공-흡혈귀와 늑대인간au

배가 고프다. 뱃가죽 안에 장기마저 사라진 거 같다. 뭐라도 입에 넣고 싶다. 내려다 본 손은 뇌기로 푸르게 물들어 뭔가를 쥐고 있다. 탄 고기 냄새가 난다. 배고파. 손에 들린 것을 먹었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다. 어느새 자신은 네발로 달리고 있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뭐라도 씹고 싶었다. 귀에 울리는 파직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달린다."뢰." 달리던 제 발이 멈춘 건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고기 냄새, 피 냄새, 떨리는 목소리. 시야를 아래로 내리자 친우의 얼굴이 보였다. 근데 여전히 배가 고파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가느다란 이성이 제 입을 막는다. 안돼, 안돼, 하지만 배가 고픈데, 이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데, 어째, 서, 먹으면 안되는데, 배가 고파. "뢰, 한 번 물어보고 싶었던 게 ..

1차/고공&의진 2025.01.15

마조-고뿔

몸이 아프다. 고공은 눈을 뜬 상태로 제 몸 상태를 직감했다. 조금 아픈거라면 꾹 참고 밭으로 나가겠지만 아, 이건 무리. 목소리 조차 나오지 않고 조금 움직였는데 근육이 쑤신다. 이럴 때에는 걍 누워서 자는 것이 최고인 걸 알기에 고공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종이를 찾아내 '아픔. 오늘 쉽니다.' 하고 쓰고 그것을 방문 앞에 붙이고 문을 잠그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확실히 몸이 좋지 않았는지 금세 의식이 혼미해져, 꿈 속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제 몸 위를 누군가가 밟고 춤춘다. 누군가가 아니다, 사형이다. 아, 제발 좀 내버려둬요. 그리 중얼거려 보지만 한 번 눌린 가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기어나오지 못하게 더 깊이 묻어야겠다. 입 안에서 흙맛이 난다..

1차/고공&의진 2025.01.15

a glimmer

그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기 그지 없다. 의원의 말로는 힘든 기억의 경우 본인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아마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월야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마차였다. 흔들리는 마차 안의 자신. 괜찮을거라고 말해주는 피투성이 붕대를 칭칭 감은 사람. 마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신 날이었다. 그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 때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도망쳤다.  처음 보는 낯선 집의 복도를 달려, 햇빛을 등지고 달리고, 도망쳤다. "너 누구야?"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는 굉장히 거만하게 말했다. 어깨를 으쓱한 상태로 남궁의 집에서 누군데 그리 뛰어다니냐고 나름의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

1차/남궁월야 2025.01.15

선인장

모든 사람은 배신 한다. 정파든, 사파든 사람인 이상 변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적의와 살의를 보여주던지, 자신에게 무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림채는 자신에게 무심하기에 지내기 편했다. 그렇기에 고공은 작물을 판 돈이 든 주머니를 잃어버렸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굳어졌다. 유소가 파를 들고 자신의 등짝을 열심히 두들겨 패겠지. "대협, 무슨 일 있으십니까?""아아, 대협. 제가 아무래도 조금 전 싸움에서 주머니를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고공은 한숨을 내쉬면 제 옆의 사내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 객잔에 앉아 있다가 벌어진 싸움판에 말려든 자신을 도와준 사내. 바로 그 전에는 자신이 팔고 있던 작물을 사간 사내. 외견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럴 때 다시 마주치다니 참, 자주 얼굴을 보인다고..

1차/고공&의진 2025.01.15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

잡고 있던 손을 놓쳤을 때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아빠도, 엄마도, 형들도,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찾아주길 바랬다. 어쩌다가 놓친 그 손을 다시 잡아주는 이는 없었다. 내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하는 이만 있었다. 그 거리에 계속 기다렸다면 부모님이 다시 오셨을까? 듬직한 첫째 형이, 조용한 둘째 형이, 시끄러운 셋째 형이 왔을까? 알 수 없다. 거리에서 쫓겨난 아이는 그저 정신 없이 달렸다. 손이, 온기가 필요해서 정신없이 달렸다. 달리면서 잊었다. 부모님 얼굴, 헝제들 얼굴, 내 이름, 손의 온기도 기억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한 해, 한 해, 넘긴 것이 기적이다.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넘기면서 내가 배운 건 도둑질이었고, 구걸이었다. 나를 동정해도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 내가 온..

1차/동연 2025.01.15

全角度看你完美地愛是學習讚美 當兩嘴巴不想分離誰還可看到限期

언젠가 여행길에서 잠시 동행했던 장사꾼이 그런 말을 했다. 이번에 한탕하고 나면 고향으로 갈거라고, 고향이 정말 최고지 않냐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다. 고향에서 나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모용 세가의 방계 출신인 어머니와 보통 주민인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좋아했던 그 사람도 있었다. 주위에서는 그 사람과 나를 보고 결혼할 사이 같다고 할 정도로 우린 붙어 다녔다. 같이 있으면 재미있지만 자신은 늘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이유 없는 갈망이었다. 그런 자신을 묶어두기 위해 부모는 자신을 모용세가에 보냈지만 정착할 수 없었다. 무술을 배우는 것은 영 성미에 맞지 않았다. 자신을 가르치던 스승도, 사형들도 재능 없다고,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 말대로..

1차/이청현 2025.01.14

설청

아침에 눈을 뜨면 시비들이 다가와 씻겨주고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는다. 설이가 일하는 걸 보고 점심을 같이 먹고 그 뒤에는 자유 시간. 멍하니 설궁을 돌아다니면서 청현은 문득 자신이 얼마나 여기 있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여기서 이렇게 보낼 수 있는 것도 설이 덕분 아닌가. 설이의 손님, 설이의 연인이니까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관계가 끝나면 당연히 여기서 나가야겠지. 미리 준비라도 해야 할까. "청현 소협, 산책 중이었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빙궁의 주인인 궁주가 서 있었다. 황급히 인사를 올린 청현에게 궁주는 편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그의 옆에 섰다. "설이가 편하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군요.""충분히 과분하게 대접 받고 있습니다.""설이한테 듣기로..

1차/이청현 2025.01.13

창세기전 3장 1절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도 자신이 누군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만난 곳이 교회였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신의 앞에서 불필요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당신도 그랬을까. "오늘 이 마을에 이사 온 고공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가서 이사 드리라고 마을 어르신께서 말씀 하셨는데 맞게 온 건가요?""어서 와요, 저는 수습 사제인 주뢰라고 합니다. 담당 사제님은 저희 어머니십니다. 지금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어요. 수도에 갔다 오시는데 수도하고 멀다 보니 앞으로 몇 년 뒤에 돌아오실 겁니다." 당신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던 걸 기억합니다. 그 미소처럼 당신은 마을에 나름 잘 자리 잡았어요..

1차/고공&의진 2025.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