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94

려진- 십이국기au

세계의 중심에 봉산이 있다. 기린이 태어나고, 선녀들이 사는 곳. 기린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사람들은 봉산에 오르는, 승산을 시작한다. 기린에게 왕으로 선택 받기 위하여. 요마들이 들끓는 황해를 건너서 목숨을 걸고, 오른다. 유진은 그런 것이 싫었다. 피를 싫어하는 자비를 가진 기린의 태생도 있겠지만 몇 십억 확률을 걸고 산을 오르는 이들의 어리석음도, 사라지는 목숨들도, 그리고 왕이 선택 되지 않아서 그 사이 나라에서 발생하는 그 많은 재해들로 죽어가는 백성들도. 아, 하늘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심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왕 같은 건 뽑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왕이 없으면 나라는 재해로 무너진다. 그는 앞선 승산에서도 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못 뽑으면 직접 왕을 찾으러 내려가야 할지도 ..

1차/제갈 려 2025.01.11

려진-환생 au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가 지은 이름은 려가 아니었지만 그는 제 이름이 싫었다. 사리구별 할 수 없었던 아기 일때도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거의 반응이 없었고 조금 큰 뒤, 그러니까 6살 쯤 제 아비의 집무실 앞에 누운 그는 덤덤하게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하였고 일주일에 걸친 투쟁의 끝에 그는 이름을 려가 되었다. 어째서 이름을 바꾸고 싶었는지 몰랐다. 그냥 그 이름이 제 이름 같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려 라는 이름을 고른 것도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곳이 자신의 집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제갈 려! 너는 대체 제갈 가문의 사람이 맞기는 한 거냐?" 아닐지도 모르지. 제 숙부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려는 방금 자신이 던진 비수를 보았다. 이런, 또 ..

1차/제갈 려 2025.01.11

설청-낯선 타인

설은 지독한 피곤함에 커피를 마시며 분수대에 걸쳐 앉았다. 점심시간이 고작 1시간이라니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떠올리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글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오늘은 몇시에 퇴근할지를 짐작해 보고 남은 커피를 비우려는 설의 눈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이 광장이 제법 유명한 관광지였지. "저 티비에서 본 적 있어요!""정말인가요? 하하, 부끄럽네요. 활동 안 한지 좀 되었는데 말이죠.""노래 진짜 잘 부르셨잖아요. 청현씨, 노래 진짜 좋아했거든요.""오, 가수였나보네요."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관광객들의 대화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온다. 청현이라고 불린 청년이 뺨을 긁적이면서 웃는 것이 보인다.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얼굴이 꽤나 평범해서 연예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1차/이청현 2025.01.10

아보와 고공-현대 au

그날은 봄이었다. 딱히 그리 맑은 날도 아니고, 미세먼지가 많았던 날이었다. 아보는 부모의 눈을 피해서 새로 이사 온 아파트 단지 안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잘 조성된 놀이터를 지나서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간 아보를 그가 불렀다. "여기 위험해요." 그리 말하면서 지나가는 차를 가르키며 말을 건 그는 아보의 손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수상한 사람은 따라거가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걸 배운 나이지만 아보는 그보다도 자신의 감을 믿었다. 비록 얼굴에 흉터가 있지만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손을 잡기 전에 손 잡아도 되냐고 물어봤으니까 라는 굉장히 자기 멋대로 판단한 거지만 말이다. 아무튼 주차장에서 나오자 자신을 찾으러 온 부모님과 만났고 아보는 혼자서 돌아다닌 것에 대하여 혼이 나야했다. 그..

1차/고공&의진 2025.01.10

페트산-2세

어느 날 허산은 알을 주웠다. 정확하게는 어디선가 툭 떨어졌다. 검은색의 타조알 크기로 제법 큰 이 알은 검은색으로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알이었다. 태릉에는 이런 알이 없는데 어디서 나온 알인걸까. 혹시 페트라가 또 무슨 마법이라도 썼나 싶어서 알을 들고 페트라를 찾아갔다. "페트라, 이거 혹시-.""뭐야?" 베게를 들어 올린 페트라가 가만히 알과 허 산을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허 산이 슬쩍 옆으로 물러서는 순간 강화 마법이 걸린 베게가 허 산을 지나 벽에 박혔다. 화를 내고 있군. 근데 왜? 허 산은 제 손에 들린 알과 다시 다른 베게를 드는 페트라를 번갈아 보았다. 물론 평소에도 버럭버럭 소리 치기는 하지만 화는 아니다. 그치만 지금은 진지하게 화를 내고 있다. 남들 눈에는 그게 그것겠지..

1차/페트라 2025.01.10

려진-화이트데이

유진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려를 보기 어려워졌다. 뭘 하는 건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의약당에 출근하더니 퇴근하면 그대로 휙 사라져서는 늦게 돌아와서는 바로 잔다. 아니, 대체 뭘 하냐고 물어도 묵묵부답, 시비들이나 다른 가솔들에게 물어도 려 도련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웃으면서 장난스레 말하니 큰 사고를 치려는 건 아닌 거 같고, 그냥 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다. 세상 누가 자기 정인이 자신을 피하는데 기분이 좋겠나. "으으으." 침대에 엎어져서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거고 말이다. 유진은 침을 들어 려를 불렀다. "팔이 쑤셔요.""이상한 사고 치는 건 아닐테지?""저의 손이 저주 받았다는 걸 깨닫는 중입니다."..

1차/제갈 려 2025.01.10

킬러au

날씨가 참 좋은 날이었다. 시아는 온유에게서 받은 총탄을 장전하면서 물었다. 괜찮아? 온유는 대답 대신 웃었다. 시아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날씨가 좋았다. 바람도 없고, 눈이나 비도 없고, 조준경 넘어로  목표가 확실하게 보인다. 방아쇠를 당겨 상대의 머리를 날리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날이었다. 볼래? 그리 물어보면서 시아는 온유에게 조준경이 달린 총을 넘겨 주었다. 조준경 넘어, 머리가 날라간 시체를 살펴보던 온유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총을 시아에게 내밀었다. "솜씨가 좋으시네요." 온유의 물음에 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 천지 나보다 솜씨 좋은 애들이 더 많지 않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총을 다시 분리해서 가방에 담았다. 누군가가 오기 전에 어서 떠나야지..

1차/시아 2025.01.10

뱀파이어&늑대인간 au

한밤중에 눈이 내리는 공원이라니 어디 가수 뮤직 비디오에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연은 돌맹이 몇개를 주워서 던졌다. 휙휙 날라간 돌맹이는 CCTV에 박혀서 그 기능을 정지 시켰다. 이걸 고쳐야 할 시 예산이라든지, 수리 기사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괜히 찍혀서 골치 아파지는 것보다 낫다. 그렇게 공원 안으로 들어가 좀 더 걸어가자 눈 위에 그대로 남겨진 발자국들이 동연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발자국들 사이로 그가 보였다.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머리카락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흔들리는 불꽃처럼 보였다. 저렇게 흔들리고, 저렇게 꺼질것처럼 보여도 꺼지지 않는 불꽃. "할배." 조용히 불러보자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텅 빈 눈동자와 마주친다. 뻐근한 목덜미를 만지는 동연에게 그가 물었다. "혹여, 작은 ..

1차/동연 2025.01.10

아보와 고공-나이 체인지

오랜만에 가문에 이모님이 들렸다는 소식에 아보는 급히 의관은 단정하게 차려 입고 자신의 이모, 월담을 맞이하러 손님방으로 향했다. 시비의 손에 들린 다과상을 거의 뺏다 싶이 한 아보는 손님방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이모에게 인사를 올렸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예요.""아보도 잘 지냈나요?" 호들갑을 떨자 아버지의 짧은 잔소리가 들렸지만 아보는 이모님 옆에 앉아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와 그것을 귓등으로 들으며 아이에게 인사를 건냈다. 아이는, 포권을 살짝 취하며 인사를 해왔다. 당연하게도 도사인 이모의 아이는 아닐테고, 아보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월담과 아버지가 아보에게 아이를 잠시 데리고 있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뭔가 안 좋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건가, 아보는 묘하게 무거운 공기를 느끼며 아이와..

1차/고공&의진 2025.01.10

눈이 내린다. 차곡, 차곡 쌓인 눈 탓에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시야? 아, 이건 꿈이구나. 단소요는 내리는 눈을 보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꿈이라서 그런지 춥지는 않다. 그리운 하얀 풍경 속에서 단소요는 그리운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면서도 여전히 그리운 이들을 떠올린다. -괜찮아? 바람 결에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멀리, 몇 미터 정도 떨어진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다. 밀려 오는 그리움에 손을 뻗어 달린다. 꿈인 주제에 눈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 푹푹 빠지는 발을 빼서 앞으로 향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에게 닿지 못한다. 지독한 꿈이지 않나. 결국 걸음을 멈춘 단소요는 휘날리는 눈 속의 그녀를, 부인을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그는 차오르는 눈물을 꾹..

1차/동연 2025.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