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94

주공-크레이프 케익

"세계는 크레이프 케익이랑 비슷해요.""취했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온 고공의 한마디와 풍기는 술냄새에 모용주뢰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지난 10개월 동안 고공과 동거하면서 주뢰는 그가 술을 마신 것을 처음 보았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라도 있었나? 주뢰가 살짝 걱정하는 사이 고공은 열심히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각층에 사는 이들은 다른 층에 있는 이들을 인지하지 못하죠. 서로 간섭 없이 그냥 있는 거 예요. 하지만 상온에 두면 녹고, 썩어버리죠. 그러니까 썩지 않게 보관을 해야 하는 거죠." "물 마시고 들어가서 자요. 단단히 취한 거 같네요.""갑자기 제가 동물로 변해도 괜찮나요?""식물로 변해도 괜찮습니다." 빨개진 얼굴로 더 말하려던 고공은 하하, 웃음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

1차/고공&의진 2025.01.13

려진

려는 문득 자신이 원래 살던 곳에서 입던 옷을 어디에 뒀는지 궁금해졌다. 분명 어디 챙겨 둔 거 같은데 싶어서 옷장을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 혹시나 해서 다른 이들에게 물어봤지만 알지 못하여 려는 자신의 수지침을 딸깍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 이상한 옷? 시비들이 정리하다가 빨래한다고 들고 가던데 중요한 옷인가 봐?""뭐, 일단 고향의 옷이기도 하니까요.""그러면 돌아 가버리지." 작게 중얼거리는 듯한 상대의 말. 그것은 익숙한 태도였다. 고향에 있었을 때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만난 부모님과 처음 보는 동생. 그 동생이 보인 태도랑 유사해 보였다. 자신의 집에 타인이 들어온 것에 대한 적개심 혹은 거부감. 그것이 생각나서 제갈 려는 멀어지는 상대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

1차/제갈 려 2025.01.13

려진-현대au

어떤 디자인이 좋으세요? 역시 심플한 게 좋을까, 유진? 하면서 려는 고개를 직원에게 추천 받은 반지를 유진에게 보여주었다.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는지 멍한 얼굴로 반지와 려를 번갈아 보았다. 투명한 보석이 박힌 반지와 초록색 보석이 박힌 반지가 유진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지?""네, 역시 유진한테는 초록색이 어울릴 거 같은데 아무래도 정인끼리 하는 반지라면 다이아도 괜찮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이건 제가 사는 거 예요. 이런 거 하나 못 살만큼 못 벌지는 않으니까요." 유진은 다시 반지를 보았다. 직원이 웃으면서 그러면 이건 어떤가요 하고 꺼내는 다른 반지에 려가 고개를 돌린 사이 유진은 지금 자신이 받은 애정에 대해 머리를 진정 시키기 위해 크게 심호흡 하였지만 그래도 머리가 굳어서 안..

1차/제갈 려 2025.01.13

주공 퇴마사 au

시야 끝에 그림자가 보였다. 슬쩍 돌아 본 그곳에는 장작을 쌓아두고 팔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환한 미소와 함께 청년. 아, 저거 사람이 아니구나, 주뢰는 제 눈으로 보이는 것에 검은 덩어리였다. 검은 연기가 뭉쳐져 있다고 해야 할까, 뒤집어 쓰고 있다고 할까, 그런 형태를 이루고 있는 걸 봐서는 원혼에 가까운 거 같은데, 쳐다보고 있으려니 시선을 알아차린 건지 청년이 주뢰를 향해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것에 주뢰는 살짝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보아하니 원혼에서 태어난 요괴 같지만 나름 사람들 사이에서 섞여서 사는 거 같으니 자신이 관여할 필요 없겠지. 객잔으로 돌아와서 방을 받은 주뢰는 방문 앞에 소금을 뿌리고 창문 아래 부적을 붙였다. 이 마을은 딱히 위험한 것이 없어 보이니..

1차/고공&의진 2025.01.13

거미줄

도망쳤다는 사파 놈들이 있다는 낡은 건물을 보며 유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곱게 한 번에 끝나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번거롭게 만든다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바로 사방에서 검과 비수가 쏟아지지만 무엇 하나도 유진에게 닿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동시에 그 무기 주인들의 급소에 유진의 손을 떠난 비수들이 박혔다. 하나, 하나 쌓여가는 시체를 넘어서 혹시나 더 숨어 있는 녀석들이 없나 찾아보던 유진이 코에 익숙한 향이 맡아졌다. 피 냄새 사이 풍기는 이 냄새, 약 냄새다. 약초를 달인, 쓰디쓴 냄새. 냄새를 따라 문을 열자 그곳은 약방이었다. 약재가 들어 있을 서랍이 있고, 약을 달이는 화로 아직도 불을 지펴져 있어 약을 끓이고 있었고 그 한 가운데에 사내가 앉아 있었다.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1차/제갈 려 2025.01.13

a youth given to daydreaming

"뢰, 뢰, 일어나세요."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자 뜨거운 햇살이 비춰지는 마당이 보였다. 괜찮아요, 라고 옆에서 묻는 이가 자신의 친우인 것을 확인하고 주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보니 언제 돌아 온 거지? 그것도 친우와 함께? 멍하게 있는 주뢰를 보면서 웃음을 터트린 친우는 그의 손에 서류 더미를 넘겨주었다. "뭘 그리 넋을 놓고 있습니까, 뢰?" 환하게 웃는 친우의 얼굴이 묘하게 낯설어 보였다. 활짝 웃는 얼굴과 흉터 하나 없는 얼굴. 늘 본 얼굴인데 오늘 따라 왜 이리 낯선 건지 모르겠다. "혹시 뢰, 더위라도 먹었나요? 날씨가 많이 덥기는 덥나 봅니다. 당신이 이리 멍하게 있다니 말입니다.""아무래도 그런가 봅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서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서류를 정리하고, 처리하고,..

1차/고공&의진 2025.01.13

주공 - 악몽

눈을 뜨니 네모난 하늘이 보였다. 어라? 하면서 모용주뢰는 손을 뻗었다. 자신은 분명히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그는 의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자신이 구덩이 안에 누워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냄새가 나지 않다. 설마 이거 꿈인가? 몸을 일으켜 구멍 밖으로 나오자 그곳은 숲이었다. 하늘에 달이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지만 묘하게 어두운 숲이다. 자신이 나온 구멍을 한 번 돌아보고 주뢰는 숲을 걷기로 하였다. 이것이 꿈이라면 조만간 깨어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였다.  바람이 불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끈적한 더위와 비릿내가 가득 찬 꿈. 세상에 이런 꿈이라니. 주뢰는 고개를 흔들었다. 꿈이라는 걸 깨달으면 일어나는 거 아닌가? 이어지는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둔탁하기 그지 없는..

1차/고공&의진 2025.01.13

아보와 월담이 쌔비지

청림채의 저녁 식사 시간은 단체 식사였다. 대부분의 밭일이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먹는다. 혼자서 먹고 싶어하면 내버려 두지만 그 외에는 대체로 다 같이 밥을 먹는다. 손님이든, 청림채 산적이든 다 같이 말이다. "저녁도 먹고 가시게요?""아뇨, 아보랑 모처럼 왔는데 하루만에 돌아가면 아쉽잖아요~." 제 양옆에 앉은 아보와 월담을 보고 고공은 마른 세수를 하며 자신을 진정 시켰다. "그렇지! 청림채의 선물 세트가 있던데 좀 사서 갈까요? 귀주 지부에도 들려서 나눠줄까 하는데 같이 갈래요?""공적인 배달이라면 가고 아니면 안 갑니다.""정말요~?""이 주먹밥 맛있어요." 양옆으로 시끄럽다. 귀를 틀어 막고 싶은 걸 참고 제 옆의 아보의 손에 찐감자를 올려주면서 젓가락을 움직이는 손을 빨리 움직인다. 어서 ..

1차/고공&의진 2025.01.11

헷갈려하다

서쪽의 어느 나라에는 페러트안들이 많이 살고 있다. 국가가 그들의 본체를 관리하고 생전에 미리 허가를 받은 이들이 죽을 때가 되면 페러트안에게 몸을 넘겨서 숙주의 삶을 이어서 살게 한다. 일생 자신의 삶이라고는 없는 인생이다. 그렇기에 그는 도망쳤다. 몸이 생기자마자 그 나라를 나와서 여행을 했다. 온전한 나의 삶이 갈구했다. "헤르난즈 대장이 너 엄청 싫어하는 거 알지?""압니다.""근데 용케도 폰 상사의 몸으로 지내고 있네.""하하하, 그러네요. 아, 그거 헤르난즈 대장에게 줄 서류인가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그토록 나의 삶이 필요했는데 지금 나는 그렇게 싫던 타인의 삶을 살고 있다. 하하, 어쩌겠나. 그날 그 해변에서 당신을 만나는 걸로, 폰의 감정이, 기억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거기에 굴복..

1차/가면 2025.01.11

한미-동거의 시작

그날은 하늘이 흐릿하고 당장이라고 비가 올 거 같은 날씨었다. 손님도 많이 안 오고 금요일 저녁이었기에 오늘은 일찍 문을 닫을까, 싶어서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방울이 울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죄송한- 아, 한결씨?""벌써 마감한거야?" 노트북 하나만 들고 가게로 들어 온 한결의 등장에 미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에 걸린 표말을 닫힘으로 바꾸고 커튼을 내렸다. "하지만 한결씨까지는 손님으로 봐줄게요.""마지막 손님이라는 거야?" 장난스레 웃은 한결이 빵들을 둘러보더니 쟁반에 크림빵을 몇 개 올려놓고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 서서 한결을 보던 미료는 문득 한결이 맨발인 것을 깨달았다. 슬리퍼 같은 걸 맨발로 신은 것도 아니고 양말을 신고 있는데 신발이 없다. "한결씨, 신발은 ..

1차/서한결 202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