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94

헤일미테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작은 미생물부터 생명을 가진 존재들 안에 섭리는 언제나 존재한다. 헤일로는 방금 건물 잔해에서 구한 임산부가 다른 히어로들의 부축 받아 떠나는 것을 보면 그 섭리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곁에 다가온 미테가 먹는 거 아니다, 하고 말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헤일로는 허기를 느낀다. “저 임산부 분이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건강한 아이를 낳으면 좋겠네요.”“너도 그런 걸 신경 쓰냐?”“당연하죠. 모든 생명이 그렇잖아요? 태어나고, 죽고, 다음 생명으로 돌아가는 순환 그 자체가 곧 생명이죠.”“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엄청 이상한데?”“하하하, 저도 우주의 생명체인데 섭리를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그렇게 따지면 나도 섭리 안에 있는 존재냐?”“그쵸. 당..

1차/헤일로 2025.01.07

헤일미테

여기 있었네요, 자기~?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마다 등골이 오싹하다. 언제나 입가에 짓고 있는 미소를 볼 때마다 잘 생기기는 했지, 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저 한동안 자리 비워도 될까요?”“뭐어?”“사고 안 쳐요. 진짜 잠깐 며칠만 자리 비울게요. 혹시 제가 없으면 외롭나요?”“당장 꺼져.”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그가 손을 뻗더니 자신을 끌어 당신다. 내려다 보는 눈동자가 마치 흘러 내릴 것처럼 꿈틀거린다. 그것을 멍하게 보고 있으니 이윽고 입술이 닿았다. 놀라서 도망치려는 것을 양손 목을 잡고 제 품에 가둔다. 손뿐만 아니라 몸 위를 기어다니는 촉수가 몸을 휘감는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질척하게 들어오는 것이 촉수인 걸 알고 본모습이라도 드러내서 도망쳐야하나? 하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1차/헤일로 2025.01.07

세상에 한 사람만 남고 모두가 나를 잊는다면

의진은 살면서 자신과 같은 머리색을 본 적 없었다. 새외에서 온 할머님의 어머니가 분홍 머리카락을 가졌다고 들었지만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가족들 모두 옅은색이거나 검은색이었다. 그렇기에 의진은 자신과 같은 진한 분홍 머리를 가진 청년의 방문에 놀라움을 느꼈고 이윽고 청년이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사실에 손이 자연스레 검 손잡이로 향했다. 적의는 없다. 오히려 잔뜩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말한다. “저를 아십니까?” 간절하게 애원하는 거 같은 목소리에 의진은 긴장했던 몸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흔들었다. 비틀거리던 청년은 작게 뭔가를 중얼거리는 거 같았지만 여전히 누군지 몰랐다. 혼란에 빠진 인간이 순간적으로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기에 의진은 거리를 벌리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내는..

1차/고공&의진 2025.01.07

에델과 헬가

집무실로 들어가기 전 주위를 살펴본다. 미리 말해둔건지 아무도 없다. 기척을 느껴보려려고 집중하지만 걸리는 것이 없기 그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일을 하는 헬가가 겨우 오랜만입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을 받으며 그는 그 옆으로 다가갔다. 미리 준비 해둔 거 같은 뱅쇼가 담긴 잔을 들고 홀짝이고 있으려니 긴 한숨과 함께 헬가가 펜을 내려두었다. “오랜만입니다.”“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일이 끝나고 보자면서 저를 기사들 사이에 일주일간 두고 일에 파묻혀 계셨습니까?”“그래도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는 받았습니다. 도착한지 이틀만에 신입 기사 한 명이랑 싸우셨다는 보고까지 전부 다 받았습니다.”“아, 그거 대련입니다.”“상대 얼굴에 모래를 뿌리고 주먹으로 팬 걸 대련으로 부릅니까?”“상대가 ..

1차/고공&의진 2025.01.07

헤일미테

“야.” 부름에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웃었다. 하하하, 하고는 늘 그랬듯이 웃어 보인다. 그 웃음을 자신은 좋아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이 녀석은 더 이상 자신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모든 것을 먹을 것이다. 사랑을 속삭이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누가 아는가. 그것은 어쩌면 식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은 이 얼굴이, 그가 하는 행동에 설레했다. 머리를 집어 들자 뜯겨 나간 단면에서 검은 액체가 떨어진다. 타르처럼 끈적거리는 그것이 제 손과 그 손에 끼어진 반지가 보인다. “너, 정말 여기를 전부 먹을 수 있냐?”“방금 전 내 모습조차 일부일뿐이랍니다. 먹을수록 나는 커지고,  커져서 결국 한 입에 사탕처럼 삼키게 되겠죠.” 조금전 자신이 상대한 무수한 촉수와 벌떼들을 떠올린다. 거기서 더 커질..

1차/헤일로 2025.01.07

고요와 키츠네

"나 다음주에 일본에 다녀올게."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고요가 꺼낸 말에 천룡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연인의 얼굴을 보았다. "원래 일본 쪽 길드랑 교류하던 게 있었는데 내가 분명 길드 그만둔다고 인수인계 다 했는데 그쪽에서 마지막으로 얼굴 좀 보자고 해서 길드도 사정사정하기도 하고 돈 받기로 했어." 능력 좋은 새끼, 천룡이 중얼거리고는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하였다. "언제 가는데?""다음주 월요일,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고 넉넉하게 일정 잡으면 일주일 안에 올 수 있을거야. 뭐 사다줄까?""도쿄 바나나.""어, 인터넷에서 살 수 있지 않아?""아무거나 알아서 사오든가." 뚱한 천룡의 표정을 보면서 고요는 황급히 옆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던 토키를 불러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였다. "토키, 너는 원하는 거 없어..

1차/퇴마사즈 2025.01.07

주공 판타지au

지팡이로 흙바닥에 마법진을 그리면서 모용주뢰는 흘끗 앞을 보니 고공이 도끼를 오크의 머리에서 뽑는 것이 보였다. 뽑으면서 원심력으로 휙 돌더니 옆에서 달려드는 오크의 몸을 반토막 내고는 다시 자세를 잡는다. 다시 바닥을 보며 진을 새긴다. 아, 이 부분 피가 튀어서 조금 지워졌군. 다시 그 위에 식을 적고, 그리고, 계산한다. 어릴적에는 아버지가 마법을 스는 걸 보고 정말 만능이라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런 말 하는 사람을 보면 배워보라고 해보고 싶어지는군. 시덥지 않는 생각들이 떠오르다가 사라진다.  주문을 외우며 마나를 불어넣고, 증폭 시킨다. 티없이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진다. 변하는 주변 공기가 변하는 걸 느꼈는지 고공이 오크의 가슴에 박아넣은 도끼를 두고 뒤로 물러나 주뢰의 뒤로 몸을..

1차/고공&의진 2025.01.07

헤일미테

머리가 참 깔끔하게 날라가는군, 미테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헤일로의 목을 베어버린 빌런을 보았다. 몸을 칼처럼 바꿀 수 있다고 했지 던진 몸의 일부가 칼로 변한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그냥 저 팔 뜯어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본 헤일로 몸에서 피가 흘러 넘치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고 서 있던 몸에서 흐르는 피에서 사각, 소리가 났다. 다시 날라오는 칼날들을 피해서 미테가 그 몸 뒤로 숨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가 움직였다. 아니, 그걸 피라고 부르기는 어려워보였다. 말벌 떼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떠오르는 그것들은 일부는 빌런에게 달려들었고-귀를 아프게 하는 비명이 들렸지만 미테는 귀를 한 번 후비고 말았다.-다른 일부는 떨어진 머리를 잡아 아직 서 있는 몸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와, 이거 보고..

1차/헤일로 2025.01.07

유소와 고공

채주님~ 하고 달려 온 단이 가르킨 곳으로 간 곳에서 본 풍경에 유소는 이마를 짚었다. 이게 무슨 개판인지 생각하기 전에 그는 급히 파를 꺼내 상대를 향해 삽을 휘두려는 고공과 어떻게든 그걸 말리려는 산적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한대 맞고 정신 차렸는지 금세 얼굴을 감싸고 낮게-아마도 욕에 가까운 소리일-중얼거리고는 그는 유소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너도 이리 와." 고공에게 맞을뻔한 산적도 유소의 부름에 흠짓거리며 다가와 고공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이쪽을 보는 다른 산적들을 물러나게 하고 유소는 그 둘을 바라보았다. "사고쳤어?""그게, 그, 어, 사고인가?" 얼빠진 소리를 내는 산적을 한 번 본 고공이 미간을 팍 찌푸리더니 곧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 탓입니다, 그리 말하고는 다시 입을 꾹 다문다...

1차/고공&의진 2025.01.07

소요와 동연 포스트아포칼립스 au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것 같은 울음소리에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단소요는 주위를 살폈다. 텅 빈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그 울음소리만 들린다. 울음 소리 사이사이로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가 간간히 섞여 있는 것이 단소요의 발을 돌리는 것에 성공했다. 어쩌면 살아남은 생존자의 함정이거나. 아니면 사람을 잡아 먹는 크리쳐의 속임수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울음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머릿속 폭풍우가 더 거세게 분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 날, 지구 반대편에 있던 나라 하나가 사라진 날부터 하늘은 어두워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자신의 발을 잡았던 순간과 도착한 집의 그 싸늘한 공기와 차가워진 아내를, 멀리서 들리는 크..

1차/동연 202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