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94

토키와 천룡

머리가 웅웅 울린다. 황천룡은 겨우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분명 힘이 다 해서 뻗었는데 평소라면 토키가 자신을 옮기거나 했을텐데, 그런 생각을 사이로 소리가 들렸다. 끼, 끼익, 하고 억지로 뭔가 비트는 건 같은 소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토키의 긴 백발이 보이고, 이윽고 그 소리가 토키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인 걸 깨달았다. 손에 뭔가를-던전의 귀신은 거 같은-들고 벽에 내려치면서 웃고 있다. 그 웃음 소리 사이로 끽끽, 거리는 소리가 섞여서 울린다. 천룡은 선글라스를 위로 올렸다. 분홍색이 사라지고 검은색이 보인다. 저게 뭔지 모르겠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다. 뭔가가 토키에게 씌인 상태겠지. 아마, 토키가 말한 그에게 붙어 있는 악령일까. 긴 꼬리를 ..

1차/퇴마사즈 2025.01.09

더 롱 다크 au

그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해외 출장을 나갔고 업무를 보고, 귀국하려던 날이었다. 날씨는 흐리고 부는 바람이 차가웠다. 호텔에서 나오면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초여름인데 눈이 오는 그 사실에 월야가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쯤에는 눈과 바람으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떴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월야가 사고 나겠어, 하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은 떨어지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과 밤하늘, 오로라가 보였다. 당황스러움과 이게 꿈이 아니라고 외치는 거 같은 귓가의 바람소리와 함께 눈밭으로 떨어졌다. 구르고, 구른 다음 몸을 일으키자 보이는 풍경은 설원과 나무, 그리고 불타고 있는 비행기의 잔해로 보이는 뭔가였..

1차/남궁월야 2025.01.09

린메이

린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초대 회장이자 설립자는 작은 가게부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정정당당하게 장사를 하지 않았다. 당연스레 시엔 가문은 재산을 불려가면서 뒷세계와도 이어졌다. 그렇기에 가문과 조직의  연결 고리를 강화 시키기 위해서 린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마다 종종 조직에 맡겨졌다. 방학 때 별장에 놀러가듯이 린은 조직 사람들에게서 여러가지를 배웠다. 협박, 주먹을 쓰는 법, 무기를 다루는 법, 탈세하는 법, 그것은 회사 일을 할 때도 필요한 기술이었다. 시엔 가문만 뒷세계와 긴밀한 관계만 추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건 린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날은 마침 조직에서 처음으로 총을 만진 날이었다. 자신이 쏜 총에 쓰러지는..

1차/시엔 린 2025.01.09

리베

날라가는 팔을 보면서 통각 시스템을 끄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리베는 남은 손을 들어서 다가오는 심을 만류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경찰를 보던 심이 자신을 보는 것에 리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부르는 부하들에게로 달려가는 심에게서 등을 돌려 리베는 경찰들 앞을 가로 막아 섰다. 자신보다 조직의 수장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지 않나. 경찰들이 뭐라고 하는 거 같지만 그는 전혀 듣지 않았다. 한 번 더 공격이 날라왔다. 다리가 날라갔나? 몸이 쓰러진다. 다가오는 경찰의 발목을 잡는다. 누군가가 뭐라고 말을 하는 거 같은데 그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전원이 꺼졌다. 다시 전원이 들어 왔을 때 이상한 일이지만 안도를 느꼈다. 안도를 느끼는 안드로이드라니! 스스로에..

1차/리베 2025.01.09

호오&주뢰&고공

A가 눈을 떴을 때 거기에는 처음 보는 방이었다. 화려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방의 침대 위에서 일어난 A는 여기가 어딘지 생각해보려고 했으나 생각지 않았다. 분명히 친구들이 술을 마시다가 주점을 나오고, 나오고, 기억이 안 난다. 필름이 끊긴건가? 그가 밖으로 나오자 길게 뻗은 복도가 그를 맞이했다. 복도 끝에는 있는 엘리베이터가 보여 그걸 타려고 하는 순간 다른 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드르륵, 거리는 바퀴 소리와 함께 눈앞의 모퉁이를돌아 나온 금발의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호텔 종업원인지 제복을 단정하게 입고 카트를 밀고 있던 그는 A를 보자 살짝 당황한 표정을 보이더니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는 A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저 엘리베이터 직원용인가요?" 사내는 자신의 카트에서 네모난, ..

1차/고공&의진 2025.01.09

주공-대련

"고공, 그러보니 검법은 기억하시나요?" 주뢰의 물음에 고공은 살짝 고개를 기우뚱하고는 시선을 제 손에 들린 삽을 보았다. 아마도요, 그리 말하고는 고공은 마지막으로 검을 잡은 것이 언제인지 생각해보았다. 아직 자신이 이전 산채에 있었을 때에는 검을 쓰기는 했다. 다만 일부로 몽둥이처럼 무식하게 휘두르거나 비도를 들고 다녔다. 그는 검법을 떠올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런가요? 라고 말하는 주뢰를 보면서 고공은 자신의 친우가 겨루어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고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주뢰, 대련 한 번 해보실래요?" 예상대로 주뢰의 얼굴에 웃음을 살짝 떠오르는 것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고공은 큰맘 먹고 청림채 창고 구석에 있을 검을 들고 나왔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아무도..

1차/고공&의진 2025.01.09

어느날 하루

아침부터 조금은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던 토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어떤 분이 저주 관련으로 자꾸 문의를 주셔서 개인적으로 의뢰 안 받는다든데 자꾸 연락이 오네요. 얼굴을 보고 직접 이야기해볼까 싶은데 혹시 오늘 오후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 곤란한 얼굴로 벨이 울리는 휴대폰을 들어 보이는 그의 말에 천룡은 제일 먼저 오후에 오기로 한 손님을 떠올렸다. 손님 대접하는 일은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는 전화기를 들어서 오늘 비번이라서 쉰다고 하던 고요를 불렀다. "싫다고 하는데 자꾸 부르는 거 봐서는 그냥 보통 성격머리는 아닌 거 같네. 고요하고 같이 가.""네? 아니, 고요상 오늘 쉬는 날인데 부를 수는 없죠!""이미 불렀어. 오늘은 그냥 손님 상담만 해드릴거니까 너도 적당히 놀고..

1차/퇴마사즈 2025.01.09

고천

그 부름을 천룡도 전에 들어 본 적 있었기에 그는 그것이 들리자마자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있을 고요를 보았다. 먼 곳을 보며 흔들리는 눈동자가, 적을 두고 걸음을 돌리려는 그를 붙잡게 했다. 그의 귀를 막고 눈을 마주친 상태로 천룡은 부름을 물러나게 했다."어디 정신 놓고 있어! 날 봐!" 흐려지던 눈동자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미안, 하고 덧붙이는 고요가 검을 다시 잡고 앞으로 나선다. 부름은 끊겼지만 천룡은 알고 있다. 이 부름은 10년 전에도 몇 번 들었다. 그때마다 고요는 자신과 약속이 있던지, 길드에 일이 있던지 어디론가 훌쩍 갔다가 며칠만에 돌아오고는 했다.어디에 다녀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길드에서도 어디에 가는지 아는 거 같지만 자신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 당시 어린 자신은..

1차/퇴마사즈 2025.01.09

꿈결

북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니 그곳은 축제의 한복판이었다. 알록달록한 기노모를 입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가면을 쓴 자, 손에 음식을 든 자, 흥얼거리는 자, 등을 든 자, 수많은 사람들 한 가운데에서 눈을 뜬 천룡은 눈앞의 풍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거지? 분명 고요와 함께 잠들었는데 그러면 이건 꿈인가? 슬쩍 손목을 뒤로 꺾자 손목이 90도 휙 꺾이지만 아프지 않다. 꿈이군. 자각몽인가? 주위를 살펴본다. 현대의 풍경이 아닌 영화에서나 보던 옛날 가옥, 그것도 한국이 아닌 옛날 일본 풍경의 마을이다. 자신의 주위에 일본이랑 관련된 건 토키뿐인데 생각을 하는 사이 걸음을 옮겨본다. 꿈인만큼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이라든가, 뭔가 세세한 것들은 두리뭉실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치만 분위..

1차/퇴마사즈 2025.01.09

마조-영혼 체인지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침상, 벽에 걸어 둔 옷, 작은 협탁과 붓과 벼루가 전부인 깔끔하고 아무것도 없는 방. 호오는 이 방을 알고 있다. 전에 몇 번 본 적 있다. 청림채에 있는 고공의 방이지. 근데 보화채에 머물고 있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 걸까? 호오는 몸을 일으켰다. 원래라면 자연스레 흘려내릴 하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다. 손을 들어 확인하니 분홍색이 보였다. 얼굴을 더듬어 가본다. 이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다. 입술 아래에서 만져지는 희미한 흉터의 흔적, 말끔한 목. 고공이 된 걸까? 그러면 고공은 어디로 간걸까? 호오는 몸을 일으켰다. 몸에 딱 달라 붙은 얇은 내의는 밤 사이 흘린 땀 탓인지 젖어 있었기에 호오는 그것을 벗고 벽에 걸려 있는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러보니 이렇게 ..

1차/고공&의진 2025.01.09